2015년 1월 5일 월요일

인터넷의 역사

인터넷의 역사
[ 2006.12.16 03:55:47 ]
글쓴이  
표창우
조회수: 67
홈페이지  
Email Homepage
1957년 소련의 스프트닉 위성 발사 성공은 미국에 매우 강한 도전이었다. 당시 냉전 체제에서는 이 사건을 기술적 측면보다는 군사적 측면에서 받아들였던 것 같다. 한 나라의 기술력은 국방력과 직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위기 의식이 팽배한 가운데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ARPA(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라는 연구 기획 및 관리 조직을 만든다.

ARPA는 후에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로 확대 개편되는데, 역시 국방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 부문 연구를 총괄하였다. ARPA는 18개월 만에 성공적으로 위성을 띄우는 업적을 보였으며, 컴퓨터와 통신 기술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초기 인터넷은 MIT 대학 소속의 인물들의 주도로 잉태된다. 1962년 APRA의 컴퓨터 부문 연구 프로그램 책임자로 부임한 MIT의 릭리더(Licklider)는 인터넷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예언자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미국내의 컴퓨터들이 모두 연결되어 멀리 떨어진 곳의 컴퓨터의 데이터와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주고 받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릭리더는 자신뿐만 아니라 후임 책임자들에게도 자신의 꿈을 전했고 확신시켰다. 컴퓨터 사용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군수용 민간 부문에 대한 연구 투자를 대학 중심으로 이전하는 큰 변화를 주도한다.

릭리더가 ARPA를 이끌기 직전인 1961년 MIT의 클라인락은 인터넷의 기술적 초석인 패킷 스위칭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다. 패킷 스위칭은 컴퓨터 사이의 정보 교환을 위한 연결 방식이다. 전화망이 사용하는 회선 스위칭(circuit switching)은 통화 당사자들의 두 지점을 고정적으로 연결해 놓지만, 패킷 스위칭은 정보를 패킷 단위로 인접 컴퓨터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우체국을 통해 우편물이 전달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1965년 매사츄세츠주와 캘리포니아주를 전화선으로 연결한 원거리 컴퓨터 네트워크가 실험되었는데, 이 실험을 통해 원거리 컴퓨터 통신의 가능성과 패킷 스위칭의 필요성이 확인된다.

1966년부터 DARPA를 이끌었던 MIT의 로버츠는 인터넷의 시초가 되는 알파넷(ARPANET)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데, 밥 칸에 의해 그 설계가 구체적으로 진행된다. 릭리더의 환상은 1969년에 첫 결실을 본다. 미국 UCLA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클라인락이 세운 네트워크 측정 센터가 알파넷의 첫 노드로 선정된다.

클라인락의 패킷 스위칭 분야의 공로가 인정받은 것이다. UCLA 다음으로 스탠포드 연구소(SRI, Stanford Re-search Institute), 뒤이어 유타 대학과 UCSB(산타바바라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가 추가되어 알파넷의 최초 연결이 선보이게 된다.

1972년에 열린 컴퓨터 커뮤니케이션 컨퍼런스에서 칸의 주도로 알파넷이 처음 시연된다. 워싱턴 힐튼 호텔의 지하실에서 미국 전역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보였다. 1972년에는 이메일이 개발된 해이기도 하다. 이메일의 역사는 인터넷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1972년부터 1983년은 현재 인터넷의 기본 구조를 이루는 TCP/IP 통신 프로토콜이 완성되는 시기이다. 통신 프로토콜은 두 컴퓨터 사이의 약속된 정보 교환 절차를 뜻한다. 1972년 DARPA로 옮긴 칸은 1973년 스탠포드 대학의 빈스 서프에게 서로 분리되어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들을 연결하기 위한 개방형 통신 체계에 대하여 연구하기 위한 팀의 구성을 제안한다.

최종적인 목표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분리되어 형성되어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하나로 연결하는 데 있었다. 각각의 지역 네트워크의 내부 구조에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미국 전역에 산재해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끼리 연결하는 일종의 컴퓨터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체계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인터넷의 기술적 초석인 TCP/IP 라는 개방형 통신망 프로토콜이 완성된다.

우체국을 통해 해외의 친구에게 우편물을 보낼 때 내용물을 준비하여 봉투에 담고, 주소를 기록하여 동네 우체국에서 부치면, 집중국으로, 중앙 우체국으로 전달되고 상대국 우편망을 통해 친구 가정까지 배달되면, 친구는 우편물 받아 개봉하여 읽고 고맙다는 답장을 보내오는 과정이 바로 TCP/IP 프로토콜이 관장하는 절차와 거의 같다. 인터넷이란 단어의 뜻은 네트워크와 네트워크 사이란 뜻인데, 네트워크와 네트워크를 연결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유래되었다.

1983년 1월 1일 알파넷의 프로토콜은 전부 TCP/IP 프로토콜로 바뀐다. 알파넷에 연결된 모든 컴퓨터의 프로토콜 담당 프로그램을 일시에 바꾼 것이다.

TCP/IP 프로토콜이 무르익는 동안에 인터넷은 구성에도 큰 변화를 겪는다. 80년대 초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PC와 동급의 소형 컴퓨터들은 지역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들끼리 지역망(LAN, Local Area Network)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PC와 LAN 기술의 발전은 인터넷의 구성을 소수의 대형 컴퓨터 중심의 연결 체계에서 다수의 PC급 소형 컴퓨터들이 분산되어 있는 형태로 변화시켰고 그와 같은 추세로 지금까지 발전되고 있다.

지역망은 대학이나 연구소뿐만 아니라, 일반 사무 환경에까지 컴퓨터 네트워크를 확산시켜, 이메일, 전자 결제, 전화 교환 같은 사무 자동화와 네트워크를 통한 시스템 통합(SI, System Integration),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 발전의 촉매 역할을 하였다. LAN은 다시 라우터라고 불리는 장비를 통해 인터넷과 연결되는데, 여러 가지 형태와 기술을 사용하는 다양한 LAN들을 서로 연결하는 데에는 TCP/IP와 같은 개방형 통신 프로토콜이 반드시 필요했고, 따라서 인터넷 확산이 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86년부터 1995년까지 사이에는 인터넷의 형성이 완성되는 시기이다. 미국 과학 재단(NSF,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은 이 기간에 2억불 가량의 돈을 쏟아 부으며 컴퓨터 네트워크 연구와 사용 활성화를 주도하였다. 1985년 연방 정부의 지원 없이도 독자 생존이 가능한 교육과 연구 기관들을 연결하는 정보 인프라 구성을 목표로 NSFNET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NSFNET 프로그램은 TCP/IP 프로토콜을 표준으로 삼아 더욱 확산되게 하였고, 독자 생존을 위해서는 인터넷의 상업화 전략을 추진하였다.

1995년 NSF는 NSFNET의 기간망의 지원을 중단하고, 민간 회사에서 구축하는 망을 사용하게끔 유도하는 일로 상업화 작업을 일단락 시킨다.

요즘은 인터넷을 월드 와이드 웹(WWW, World Wide Web)을 가장 많이 접하고 있어 WWW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려고 한다. “인터넷 = 홈페이지” 등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홈페이지는 WWW에서 어떤 한 개인이나 기관의 대표 하이퍼텍스트 파일(hypertext file)을 뜻하는 것이다.

WWW는 하이퍼텍스트 교환 프로토콜(HTTP) 기반의 정보 인프라로서 인터넷 위에 구축되어 있다. 하이퍼텍스트는 일반 파일과 달리 구조를 갖는다. 구조를 갖는다는 의미는 서로 관련있는 부분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고, 다른 파일과도 연결되어 있어, 원하면 연결을 따라 관련 정보로 이동할 수 있음을 뜻한다. 한편 일반 파일은 실과 같이 한 줄로 이어진 문자열로 볼 수 있다. 원래 하이퍼텍스트는 같은 컴퓨터 안에서 활용하게끔 의도되었는데, 이런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게 한 것이 WWW이다.

즉, 어떤 파일과 연관 있는 다른 파일이 인터넷 어느 곳에 있든지 하이퍼텍스트 연결이 가능하게 한 것이 WWW이다. 넷스케입이나 익스플로러는 이런 하이퍼텍스트를 인터넷 상에서 뒤지는 (browsing) 도구이다. WWW는 유럽의 CERN(핵물리 연구소, 소립자 연구가 활발하다)을 중심으로 개발되어 발전되었다.

미국의 TCP/IP 기반 인터넷 기술이 유럽에 들어 가면서, 세계 각처의 과학자들을 엮어 협동 연구를 하고, 연구 문서 교환을 원활히 하기 위해 1989년 팀 버너스-리가 제안하고 주도하여 WWW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온 인터넷을 웹이 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다.

1995년 10월 24일 미국 연방 네트워킹 평의회(FNC, Federal Net-working Council)는 인터넷 (Internet) 이란 용어의 정의를 결의한다. 문자적으로 보면 소문자 i로 시작하는 인터넷에서 대문자 I로 시작하는 인터넷으로 바뀐 것이지만,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네트워크와 네트워크의 상위 개방형 연결 형태를 지칭하던 것에서 거대한 통신망의 실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인터넷은 1992년 체제를 갖춘 ISOC (Internet Society)에 의해 운영된다고 보면 된다. ISOC에는 IAB(Inter-net Architecture Board)와 IETF(Internet Engineering Task Force) 두 개의 주요 조직이 있는데, IAB는 교회의 당회에 해당하는 조직이고, IEFT는 집사회에 대응된다. 프로토콜 표준화와 같이 기술적인 내용을 IETF가 연구하여 결정하면, IAB에서 이를 인정하고 널리 쓰이게 한다.

미래의 인터넷은 어떤 모습일까? 미래 사회의 기술 주역은 컴퓨터, 통신, 이동성, 멀티미디어 (Computer, Communication, Mobility, Multi-media) 이렇게 네 개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CCMM으로 기억하면 잊지 않는다. 컴퓨터와 통신의 기술은 이미 결합된 지 오래고, 계속 발전할 것이다. 사용자들은 움직이며 통신하며, 컴퓨터를 사용하기 원하고 있다. 발달된 통신망에는 문자위주의 정보뿐만 아니라 목소리, 음악, 영상, 동영상 등의 멀티미디어 정보들을 주고 받기를 원하고 있다.

요즘 휴대폰에는 이런 요소들이 이미 다 들어와 있다. 휴대폰은 무선 통신 능력이 있는 일종의 컴퓨터이다. 언제, 어디에서든지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CCMM 체계가 발달되고 있으며, 인터넷이 그 하부구조를 이루고 있다. 더 나아가 TV, 냉장고, 주방기구, 세탁기와 같은 가정의 모든 가전 제품들과 수도, 가스, 전기 관련 기기들도 인터넷에 연결되는 날이 올 것이다. 집 밖에서 거실의 에어컨을 작동시켜 들어 갔을 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게 하고, 조리 기구를 가동시키고, 원하는 TV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우유가 없으면, 냉장고 문에 붙은 컴퓨터 화면을 통해 인근 수퍼에 배달 주문을 인터넷으로 보낼 수 있다. 수도, 전기, 가스 검침원은 역사 기록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많은 일이 실세계의 일과 연결되어 진행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현실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진행했던 일이 인터넷 상에서 간단히 해결된다. 인터넷 뱅킹이 대표적인 예이며, 이미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인터넷 뱅킹의 극단을 생각해 보면, 돈의 개념에 중요한 변화가 오게 된다. 사이버 머니는 형태는 없지만, 구매력을 지닌 엄연한 돈의 한 형태이다.

인터넷을 통한 서비스 제공, 전자 상거래, 사이버 머니를 이용한 결재 등은 세상을 변화시킬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꽃인 돈의 모습과 흐름 과정을 통째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제대로만 된다면, 가진 자들이 돈 갖고 장난 치는 일과 탈세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에는 완벽한 것이 없기 때문에 또 어떤 허점이 발견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CCMM 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의 확산이 밝은 미래만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보안, 개인 정보와 사생활 보호, 윤리적 문제 등이 벌써 문제 되고 있다. 과거에는 집 문 단속만 잘하면 안심하고 잘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누가 내 컴퓨터에 침투하여 내 은행 계좌 번호를 알아내어 돈을 빼가지 않는지, 내 사적인 중요한 정보를 빼내가지 않았는지, 어제 작성한 보고서를 적대적 관계에 있는 회사에서 빼내가지 않았는지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자녀들이 게임 중독에 걸리지 않았는지, 불건전한 채팅에 빠져 있지 않는지, 포르노물에 빠져 있지는 않나 걱정해야 한다.

인터넷은 군사적인 동기와 목적으로 시작되어, 대학과 연구 기관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상업화를 통해 대중 일반에게 활짝 열렸다. 그 중심에는 협업 (collaboration) 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깃들여 있다. 발전 단계에서도 그랬고, 현재 사용하는 목적도 그렇다.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데 유용한 매체이다. 모이기를 힘쓰는 데에도 아주 유용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 바벨탑일 수도 있고, 아직 정복되지 않은 가나안 땅일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 땅끝까지 복음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이버 공간까지 의미하셨을까 궁금해 진다. 답을 듣지 않아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들어가 싸워 점령해야 하는 우리의 지경으로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음란한 세력과 우상 숭배자들과 한판 승부를 내야 하는 곳이다.

복음 전파의 강력한 매체로서 활용해야 한다. 정보 인프라가 없는 국가는 경쟁력이 떨어져 도태될 수 밖에 없음을 세계의 지도자들은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어떤 나라의 지도자들이라도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 인프라를 수용하는 데 이견이 없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의견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정치 경제 문제 때문에 인터넷을 무시 못 할 것이다. 할렐루야! 인터넷을 타고 국경을 넘을 때에는 비자가 필요 없다.

인터넷 위에 구축되고 있는 가상 현실 세계와 실세계가 점점 구분이 없어지고 있는 이 때에 우리의 선교적 사명을 위해 과감히 사이버 공간을 침노해야 할 때가 무르익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