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미디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미디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5년 1월 5일 월요일

[인터넷 거버넌스] NSI vs ICANN

[인터넷 거버넌스] NSI vs ICANN

| 성명서
2000/03/30
※ 2000년 3월 24일 한국인터넷정보센터 아이켄 포럼(ICANN FORUM) 자료

NSI vs ICANN


1. NSI와 ICANN 간의 분쟁의 연원

지난 1999년 9월, DoC, NSI, ICANN 간의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로서 수년간 끌어오던 도메인 네임 등록 업무에 대한 다툼이 일단락되었다. 이 협정은 그동안 논의되어 오던 도메인 등록 업무의 경쟁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새로운 gTLD(generic Top Level Domain)를 둘러싼 논란의 해결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이 협정이 체결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그동안의 쟁점과 이 협정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잘 알려진 바대로 초기에 인터넷 도메인 네임과 주소 관리는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Information Sciences Institute(USC-ISI)에서 Jon Postel이 DARPA의 지원을 받아 행하고 있었다. 바로 이 활동이 Internet Assigned Numbers Authority(IANA)라고 불리는 업무였다.
존 포스텔이 15년동안 수행해오던 임무는 1987년 USC의 ISI로부터 SRI-NIC(Defense Data Network Information Center at SRI International/Stanford Research Institute Network Information Center)로 위탁되었다.
또한 1991년 도메인 네임 등록 권한이 다시 SRI-NIC에서 Government System Inc.(GSI)로 이관되었다. 이 등록 업무(DNS 서버의 운영과 TLD의 등록 업무)는 1993년 1월 1일부터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와 NSI(Network Solutions Inc.) 간의 협력협정에 의하여 GSI에서 NSI로 이관되어 수행되었다.
즉 NSI의 등록업무는 당초에는 IANA의 기능의 일부였다가 SRI-NIC으로, 다시 GSI로 이관되었다가 1993년 NSI로 이관된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NSI의 업무가 단지 도메인 네임 등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Internet Registry의 기능까지도 포함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애초에는 도메인 네임 등록업무와 IR 기능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수행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현재까지 NSI가 유일한 등록처로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게 되는 역사적 연원인 셈이다.
1994년, 도메인 네임의 등록은 민간 영리기업인 Network Solutions(NSI)가 National Science Foundation(NSF)와의 5년 협력 협정을 통해 맡게 되었다. 원래 NSI는 매년 1백만 달러의 고정금을 가지고 이 일을 수행하기로 되어있었지만, 도메인 네임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상업적 등록업무에 대한 연방 지원금을 배정하는 것이 부적절했기 때문에 NSI는 도메인 네임 등록에 대해 요금을 부과하도록 해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다. 연방 정부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1995년 7월부터 .com, .net, .org 도메인 네임 사용자에 대해 연간 50달러의 요금이 부과되었다.
요금 덕에 북미에서 도메인 네임 사업을 독점적으로 하던 NSI는 수백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상업적으로 대단히 매력적인 사업을 차지하게 되었다. 도메인 네임 등록은 (북미에서는) NSI에 의해 성공적으로 상업화되었다.


2. 인터넷 관리의 민간이관 시도

1994년 7월, 포스텔은 IANA 기능을 USC-ISI와 정부 간의 계약으로부터 Internet Society에 넘길 것을 제안하는 charter를 준비했다. 이것이 인터넷 가버넌스에 대한 민간이양의 최초의 시도였다. IANA의 민영화를 위한 포스텔의 시도는 1996년 10월, International Ad Hoc Committee(IAHC)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IAHC는 ISOC, 이전까지 ISOC에 대한 반대자였던 ITU, 지적 재산권과 관련된 이해당사자인 WIPO, INTA(International Trademark Association), NSF, IETE/ISOC에서 개개인이 참여한 연합체의 성격을 띄었다. IAHC는 11월 발표한 최종 보고서에서 도메인 네임에 경쟁 도입을 위한 제안을 했다.
도메인 네임 등록에 본격적인 경쟁을 도입함과 동시에 도메인 네임 스페이스는 '공적 자원'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도메인 네임 등록 업무에 관한 안을 제시했다. 새로운 도메인 네임 등록처의 운영은 민간 영리 회사에게 맡긴다. 이에 따르면 NSI와 같은 회사가 여럿 생겨서 경쟁을 하게 된다. 즉 도메인 네임 등록을 완전히 시장의 경쟁에 맡긴다는 것이다. 또한 등록처의 데이터베이스를 비영리 독점인 것으로 인식하여, 등록처 데이터베이스의 'wholesale' 운영의 기능(등록처)과, 등록의 'retail' 기능(네임 등록, 청구, 컨택트 정보 유지 등; 등록대행처)을 분리한다.
즉 등록처 간, 등록대행처 간에는 경쟁이 도입되지만, 하나의 등록처는 경쟁하는 여러 등록 대행처에 의해 비영리 기반으로 운영되며 TLD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도메인 네임에 있어서 상표권 보호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이는 새로운 TLD의 도입에 대한 상표권자의 반대를 잠재우고 도메인 네임 등록에 있어서 상표권자에게 힘을 부여하기 위한 조치였다. 주요한 내용은 도메인 네임에 대한 60일 간의 대기 기간의 도입, WIPO에 의한 검토와 분쟁 해결, '유명한' 상표에 대한 등록 배제 등이었다.
또한 IAHC는 포스텔이 제안했던 새로운 '서술적' TLD 중에서 7개{{) .web, .info, .nom, .firm, .rec, .arts, .store의 일곱 개이다.
}}만을 다시 제안했다. 이 역시 지나치게 많은 새로운 TLD의 도입으로 상표권 보호에 어려움을 생길 것을 두려워하는 상표권자의 요구를 받아들인 타협적인 제안이었다.
IAHC는 나아가 Generic Top Level Domain Memorandum of Understanding(gTLD-MoU)라는 새로운 가버넌스의 구조를 제안했다. 등록대행처는 매스터 데이터 베이스의 서버를 고나리하는 비영리 조직인 Council of Registrars(CORE)에 가입하게 되는데, 가입비로 2만 달러, 월 2천달러, 그리고 도메인 네임 당 일정 요금을 내도록 했다.
한편 NSI는 gTLD-MoU를 통한 공동등록모델(shared registry model)이 IAHC의 시도가 NSI의 .com 도메인에 대한 통제권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았다.
논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미 정부가 공식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1997년 7월, 민간이양의 책임은 NSF로부터 물려받은 상무성 산하 NTIA(National Telecommunication and Information Administration)는 도메인 네임 정책에 관한 Notice of Inquiry를 내놓았다. 미 정부는 루트 서버에 대한 최종적 권위를 주장했고, 전세계적인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권위를 넘겨주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이제 IAHC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미 상무성 주도의 민간이양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3. ICANN의 설립과 NSI와의 갈등

1998년 2월, 미 상무성은 "A Proposal to Improve Technical Management of Internet Names and Addresses"("Green Paper")를 발표하였다. 이 제안에서는 미국에 본부를 두고 DNS와 IP 주소를 관리하는 국제적 민간 비영리 법인을 구상했다. 미 정부는 또한 경쟁을 위해 제한없이 등록대행처를 새로 만들 것을 권고하고, 2000년 9월 30일까지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1998년 6월, 미 상무성은 최종 보고서인 White Paper(Management of Internet Names and Addresses)를 발표했다. 미 정부의 최종안('White Paper')은 도메인 네임 등록사업을 경쟁적이고 시장 중심적인 사업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확인했다. 그러나 새로운 TLD를 즉각 추가한다거나 새로운 등록처를 인가한다거나 하는 미 정부의 직접 개입은 배제되고, 이런 일들은 새로운 민간 부문 조직으로 넘겨졌다. 한편 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WIPO)에게 도메인 네임 상표분쟁에 대한 해결 방안 권고안을 제시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상표권에 대한 우려를 누그러뜨리고자 했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민간 부문 조직(New Co)을 위한 리더쉽을 발휘하도록 미 정부가 염두에 둔 것은 포스텔의 IANA와 ISOC/gTLD-MoU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Internation Forum on the White Paper(IFWP)은 White Paper의 '민간부문 이양' 발표에 고무되어 자발적으로 구성된 국제적 모임이었다. 그러나 IFWP를 통해서도 IANA, NSI 등 이해가 상충하는 당사자들을 모두 불러 모으지 못했고, 따라서 광범위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결국 New Co인 ICANN은 IANA/ISOC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임시 이사회는 사실상 포스텔이 지명한 인사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특히 CEO/President인 Roberts는 ISOC의 멤버였다.
}}
NSI는 강력한 반대자로서의 지위를 지켰다. NSI는 도메인 네임과 루트 서버 시스템에 대한 통제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NSI는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과의 '협력협정' 하에서 DNS에 대한 관리를 수행했다. NSI는 .com, .net, .org 데이터베이스를 독점적으로 통제하는 등록처의 역할과 함께, 사용자로부터 도메인 네임 등록을 받는 '등록대행처' 업무를 동시에 수행했다. 따라서 가격과 계약 내용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런데 White Paper에서는 NSI의 지위와 관련된 내용이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단지 DNS는 민간 부문에 의해 이해 당사자 간의 자발적인 계약을 바탕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모호하게 언급했을 따름이었다. 여기서 그 책임과 역할을 맡는 민간 부분이란 New Co이며 이는 사실상 ICANN이다. 따라서 DNS의 관리는 정부와의 계약 관계 하에서 ICANN이 되는 NewCo 간의 계약 관계 하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이 이행과정에서 NSI는 '걸림돌'이었으나,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과정은 모호했다.
1999년 6월, ICANN과 DoC간의 MoU에서는 DNS 업무의 민간이양(즉 ICANN으로의 이양)을 구체화했다. MoU에서는 특정 DNS 기능에 대한 관리 책임을 민간으로 이전하는 데 필요한 메카니즘, 방법, 절차를 협력적으로 발전시키고 시험할 것"을 합의했다.
또한 상무성과 NSI는 계약을 갱신하여 NSI는 DNS에 대한 '등록 공유 시스템(Shared Registration System; SRS)을 구축하도록 했다. 등록 공유 시스템을 통해 복수의 경쟁하는 회사가 동등한 자격으로 등록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NSI는 여전히 등록처와 등록대행처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1999년 3월, ICANN에서는 등록대행처의 '인가'에 대한 기준 발표했다. '등록 인가 가이드라인(registration accrditation guidelines)'에서는 등록대행처의 재정적 사업적 자격을 명시했다. 등록처는 ICANN에 5천 달러의 요금과, 도메인 네임 당 1달러의 요금을 내야 한다. 또한 WIPO의 권고안에 따라, 인가 계약은 상표권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조치가 포함되었다. 선지불 등록, 특정 도메인 네임에 대한 ICANN의 유보 권한 등이 포함되었다. 1999년 4월, ICANN은 등록 공유의 시험기간동안 5개의 등록대행처를 인가하여 본격적으로 경쟁에 참여하도록 했다.
같은 달, Doc와 NSI 간에는 인가 등록대행처와 NSI 간의 관계를 규제하는 합의가 도출되었다. 상무성은 등록의 'wholesale' 가격을 도메인 네임당 9달러로 규제하였다. 등록대행처는 SRS 소프트웨어를 설비를 위해 NSI에 1만 달러의 요금을 지불하도록 했다. NSI는 여전히 gTLD 등록을 쥐고 있었고 등록처와 등록대행처 서비스를 동시에 행했다.
결과적으로 ICANN이 도메인 네임 루츠 서버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NSI를 포함한 다른 모든 등록처는 ICANN으로부터 면허(license)를 받으며 모든 등록대행처는 ICANN에 의해 직접 승인(accredit)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NSI가 ICANN의 인가계약을 승인하는 것은 gTLD 등록에 대한 독점적 통제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언제 승인하는가 또한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일단 승인을 하고 나면 NSI의 협상력은 제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ICANN, DoC, NSI 간의 갈등은 격화되었다.
NSI는 당연하게도 ICANN과의 계약을 거부했다. 원래의 협력협정은 모호한 점이 있었는데, 협정이 끝나면 NSI는 데이터베이스의 사본을 상무성/NTIA에 제출하기로 되어있었으나 이것이 NSI의 등록업무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무성과 ICANN의 입장에서 보면 등록업무는 재할당되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NSI의 입장에서 보면 zone files의 보유자로서 정부의 감독없이 gTLD를 계속 운영할 수 있는 것이었다.
ICANN은 50개 이상의 등록대행처에게 허가를 내주었으나 NSI와의 계약이 난항을 겪는데다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NSI의 의도와 기술적인 문제까지 겹쳐, 6월에 완료될 예정이었던 시험기간은 계속 연장되어 경쟁 도입은 지연되었다. NSI는 원래 1999년 6월까지 도메인 등록 업무의 시장경쟁의 기반이 되는 Shared Registration System; SRS을구축하기로 했으나 1999년 9월말까지로 연장되어 도메인 등록 업무의 경쟁 도입은 실질적으로 지연되었다.
또한 상표권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로서, NSI가 ICANN의 등록대행처 인가계약을 승인하여 여러 등록대행처 중 하나가 되는 과정이 지연됨으로써, 등록대행처 인가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UDRP에 관한 내용 또한 실효를 발휘하지 못하였다.
NSI의 로비로 하원 상업위원회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고, ICANN의 지도력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었다. ICANN에 대한 비판자들과 NSI는 선출되지 않은 임시 이사회가 너무 많은 중요한 결정을 비밀스럽고도 성급하게 내리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결국 ICANN은 이사회를 공개하고, '세금'이라는 비난에 휩싸여 네임당 1달러의 요금을 부과하려는 시도를 선출된 이사회의 결정으로 미뤄 사실상 철회했다.

4. DoC, NSI, ICANN 간의 협정

1999년 8월, NSI는 DoC와 이른바 'DotComDirectory'에 대한 접근과 사용에 대한 제한을 없애기로 합의하는 등의 협상 과정을 통해 도출된 1999년 9월의 DoC, ICANN, NSI 간의 협정은 이전의 구상과는 크게 달라진 타협적인 것이었다.
이 협정은 NSI의 독점을 종결시키는 중요한 걸음을 내딛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NSI는 경쟁업체가 등록업무를 위해 확보해야 하는 메인 디렉터리에 대한 'wholesale price'를 내릴 고, 도메인 네밍 사용자가 등록을 옮길 때 아무런 페널티가 없도록 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DoC와 NSI 간의 계약은 또다시 연장되었고 NSI는 등록처와 등록대행처의 지위를 여전히 유지하여 여전히 독점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합의에 따르면, NSI는 4년 동안 .com, .net, .org 도메인에 대한 등록처로서의 계약을 유지하고, 만약 등록처 업무를 포기하고 등록대행처로 기능할 경우 계약을 4년간 더 연장시키기로 했다.
또한 ICANN이 NSI에게 새로운 정책을 부과할 때는 이 문제를 다루는 ICANN의 회원 조직의 2/3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ICANN으로서도 ccTLD의 문제, 새로운 gTLD의 도입 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6백만 도메인 네임의 확보하고 있는 NSI와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타협은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NSI가 ICANN을 인정하고 완전 경쟁이 도입된다면 ICANN의 지위는 한층 안정화되고 상승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협정은 '잠정적'이라는 단서가 붙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결국 도메인 네임 관리의 민간이양이라는 미 정부의 계획은 DoC와 NSI 간의 계약이 연장됨으로써 실현되지 못했다. 타협안의 핵심은 DoC와 NSI 간의 계약 연장이었으며, NSI의 의무가 무엇인가에 대한 타협안을 도출하는 데 있어서 ICANN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이 협정은 민간 법인으로서 ICANN의 권위는 미 정부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역설적인 사례였다.

협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NSI는 ICANN을 인정하고 ICANN과의 '등록처 협정'에 따라 gTLD 등록처(.com, .net, .org)를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ICANN은 4년 동안 NSI를 gTLD 등록처로서 면허하기로 합의했다. NSI가 18개월 이내에 등록대행처 기능으로부터 등록 업무(registry)를 완전히 제거하면, 등록처 계약은 4년간 연장된다.
= NSI는 ICANN 공인 등록대행처로부터만 도메인 네임 등록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 NSI는 얼터너티브 DNS 루트 서버 시스템을 만들지 않기로 합의했다.
= NSI의 wholesale 등록처 가격은 2000년 1월 15일부터 네임당 1년 9달러에서 6달러로 인하된다.
= NSI의 'retail' 등록대행처 가격에 대한 규제는 해제된다(Cooperative Agreement에 의해 네임당 1년 35달러로 고정되어 있었다).
= NSI는 ICANN에 125만 달러의 등록처 대행처 요금을 선납한다.
= NSI는 미 상무성의 지시에 따라 authoritative 루트 서버 시스템을 계속 운영한다.

또한 새 협정에 따른 ICANN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 ICANN은 새로운 권위를 행사하는 데 있어서 특정한 절차적 제한을 따라야 한다. 많은 결정은 지원기구 평의회의 2/3 이상이 필요하다.
= gTLD 등록처에 대한 ICANN의 정책 권위는 다른 등록처들을 집중화된 계약 체제 내로 끌어들여서 그 결과 NSI가 경쟁에서 불이익을 갖지 않는다면 종결될 수 있다. 아마도 이는 ccTLD 등록처에도 해당된다.
= ICANN이 등록대행처에 부과하는 요금은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하며 요금의 2/3를 내는 등록대행처에 의해 승인되어야 한다. 이는 NSI에게 ICANN의 '과세' 정책에 대한 상당한 영향력을 부여할 것이다.
= NSI가 ICANN에 지불하는 등록대행처 요금액은 200만 달러를 넘지 못한다.

여기서 미정부(상무성)은 루트 서버에 대한 최종적인 통제권('정책적 권위')을 여전히 보유하게 되었다. 민간이양에 대한 애초의 계획은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셈이다. 따라서 계약 내용은 '자율규제'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 계약은 최장 8년까지 연장될 수 있었는데, 따라서 이 기간동안 상무성은 등록비를 직접 정하는 등의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그동안 미 정부의 비일관된 정책 결정의 결과물이었다. 규제에서 탈피하여 민간 부문으로 이양한다는 말과 핵심 데이터의 재산권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는 것은 명백히 모순된다.
쟁점은 결국 쟁점은 매스터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소유권을 누가 갖는가, NSI의 재산인가 아니면 DoC의 궁극적인 통제권을 갖는가, ICANN이 새로 넘겨받는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미 정부와 DoC는 인터넷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고육지책으로 DNS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을 사실상 연장했고, NSI, ICANN과 타협적인 협정을 맺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분류 : 인터넷 거버넌스 | 일반자료 |
덧글(0) 트랙백(0) 이 문서의 주소: http://acton.jinbo.net/zine/view.php?board=policy&id=26&page=163

인터넷의 역사

인터넷의 역사
[ 2006.12.16 03:55:47 ]
글쓴이  
표창우
조회수: 67
홈페이지  
Email Homepage
1957년 소련의 스프트닉 위성 발사 성공은 미국에 매우 강한 도전이었다. 당시 냉전 체제에서는 이 사건을 기술적 측면보다는 군사적 측면에서 받아들였던 것 같다. 한 나라의 기술력은 국방력과 직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위기 의식이 팽배한 가운데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ARPA(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라는 연구 기획 및 관리 조직을 만든다.

ARPA는 후에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로 확대 개편되는데, 역시 국방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 부문 연구를 총괄하였다. ARPA는 18개월 만에 성공적으로 위성을 띄우는 업적을 보였으며, 컴퓨터와 통신 기술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초기 인터넷은 MIT 대학 소속의 인물들의 주도로 잉태된다. 1962년 APRA의 컴퓨터 부문 연구 프로그램 책임자로 부임한 MIT의 릭리더(Licklider)는 인터넷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예언자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미국내의 컴퓨터들이 모두 연결되어 멀리 떨어진 곳의 컴퓨터의 데이터와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주고 받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릭리더는 자신뿐만 아니라 후임 책임자들에게도 자신의 꿈을 전했고 확신시켰다. 컴퓨터 사용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군수용 민간 부문에 대한 연구 투자를 대학 중심으로 이전하는 큰 변화를 주도한다.

릭리더가 ARPA를 이끌기 직전인 1961년 MIT의 클라인락은 인터넷의 기술적 초석인 패킷 스위칭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다. 패킷 스위칭은 컴퓨터 사이의 정보 교환을 위한 연결 방식이다. 전화망이 사용하는 회선 스위칭(circuit switching)은 통화 당사자들의 두 지점을 고정적으로 연결해 놓지만, 패킷 스위칭은 정보를 패킷 단위로 인접 컴퓨터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우체국을 통해 우편물이 전달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1965년 매사츄세츠주와 캘리포니아주를 전화선으로 연결한 원거리 컴퓨터 네트워크가 실험되었는데, 이 실험을 통해 원거리 컴퓨터 통신의 가능성과 패킷 스위칭의 필요성이 확인된다.

1966년부터 DARPA를 이끌었던 MIT의 로버츠는 인터넷의 시초가 되는 알파넷(ARPANET)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데, 밥 칸에 의해 그 설계가 구체적으로 진행된다. 릭리더의 환상은 1969년에 첫 결실을 본다. 미국 UCLA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클라인락이 세운 네트워크 측정 센터가 알파넷의 첫 노드로 선정된다.

클라인락의 패킷 스위칭 분야의 공로가 인정받은 것이다. UCLA 다음으로 스탠포드 연구소(SRI, Stanford Re-search Institute), 뒤이어 유타 대학과 UCSB(산타바바라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가 추가되어 알파넷의 최초 연결이 선보이게 된다.

1972년에 열린 컴퓨터 커뮤니케이션 컨퍼런스에서 칸의 주도로 알파넷이 처음 시연된다. 워싱턴 힐튼 호텔의 지하실에서 미국 전역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보였다. 1972년에는 이메일이 개발된 해이기도 하다. 이메일의 역사는 인터넷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1972년부터 1983년은 현재 인터넷의 기본 구조를 이루는 TCP/IP 통신 프로토콜이 완성되는 시기이다. 통신 프로토콜은 두 컴퓨터 사이의 약속된 정보 교환 절차를 뜻한다. 1972년 DARPA로 옮긴 칸은 1973년 스탠포드 대학의 빈스 서프에게 서로 분리되어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들을 연결하기 위한 개방형 통신 체계에 대하여 연구하기 위한 팀의 구성을 제안한다.

최종적인 목표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분리되어 형성되어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하나로 연결하는 데 있었다. 각각의 지역 네트워크의 내부 구조에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미국 전역에 산재해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끼리 연결하는 일종의 컴퓨터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체계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인터넷의 기술적 초석인 TCP/IP 라는 개방형 통신망 프로토콜이 완성된다.

우체국을 통해 해외의 친구에게 우편물을 보낼 때 내용물을 준비하여 봉투에 담고, 주소를 기록하여 동네 우체국에서 부치면, 집중국으로, 중앙 우체국으로 전달되고 상대국 우편망을 통해 친구 가정까지 배달되면, 친구는 우편물 받아 개봉하여 읽고 고맙다는 답장을 보내오는 과정이 바로 TCP/IP 프로토콜이 관장하는 절차와 거의 같다. 인터넷이란 단어의 뜻은 네트워크와 네트워크 사이란 뜻인데, 네트워크와 네트워크를 연결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유래되었다.

1983년 1월 1일 알파넷의 프로토콜은 전부 TCP/IP 프로토콜로 바뀐다. 알파넷에 연결된 모든 컴퓨터의 프로토콜 담당 프로그램을 일시에 바꾼 것이다.

TCP/IP 프로토콜이 무르익는 동안에 인터넷은 구성에도 큰 변화를 겪는다. 80년대 초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PC와 동급의 소형 컴퓨터들은 지역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들끼리 지역망(LAN, Local Area Network)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PC와 LAN 기술의 발전은 인터넷의 구성을 소수의 대형 컴퓨터 중심의 연결 체계에서 다수의 PC급 소형 컴퓨터들이 분산되어 있는 형태로 변화시켰고 그와 같은 추세로 지금까지 발전되고 있다.

지역망은 대학이나 연구소뿐만 아니라, 일반 사무 환경에까지 컴퓨터 네트워크를 확산시켜, 이메일, 전자 결제, 전화 교환 같은 사무 자동화와 네트워크를 통한 시스템 통합(SI, System Integration),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 발전의 촉매 역할을 하였다. LAN은 다시 라우터라고 불리는 장비를 통해 인터넷과 연결되는데, 여러 가지 형태와 기술을 사용하는 다양한 LAN들을 서로 연결하는 데에는 TCP/IP와 같은 개방형 통신 프로토콜이 반드시 필요했고, 따라서 인터넷 확산이 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86년부터 1995년까지 사이에는 인터넷의 형성이 완성되는 시기이다. 미국 과학 재단(NSF,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은 이 기간에 2억불 가량의 돈을 쏟아 부으며 컴퓨터 네트워크 연구와 사용 활성화를 주도하였다. 1985년 연방 정부의 지원 없이도 독자 생존이 가능한 교육과 연구 기관들을 연결하는 정보 인프라 구성을 목표로 NSFNET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NSFNET 프로그램은 TCP/IP 프로토콜을 표준으로 삼아 더욱 확산되게 하였고, 독자 생존을 위해서는 인터넷의 상업화 전략을 추진하였다.

1995년 NSF는 NSFNET의 기간망의 지원을 중단하고, 민간 회사에서 구축하는 망을 사용하게끔 유도하는 일로 상업화 작업을 일단락 시킨다.

요즘은 인터넷을 월드 와이드 웹(WWW, World Wide Web)을 가장 많이 접하고 있어 WWW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려고 한다. “인터넷 = 홈페이지” 등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홈페이지는 WWW에서 어떤 한 개인이나 기관의 대표 하이퍼텍스트 파일(hypertext file)을 뜻하는 것이다.

WWW는 하이퍼텍스트 교환 프로토콜(HTTP) 기반의 정보 인프라로서 인터넷 위에 구축되어 있다. 하이퍼텍스트는 일반 파일과 달리 구조를 갖는다. 구조를 갖는다는 의미는 서로 관련있는 부분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고, 다른 파일과도 연결되어 있어, 원하면 연결을 따라 관련 정보로 이동할 수 있음을 뜻한다. 한편 일반 파일은 실과 같이 한 줄로 이어진 문자열로 볼 수 있다. 원래 하이퍼텍스트는 같은 컴퓨터 안에서 활용하게끔 의도되었는데, 이런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게 한 것이 WWW이다.

즉, 어떤 파일과 연관 있는 다른 파일이 인터넷 어느 곳에 있든지 하이퍼텍스트 연결이 가능하게 한 것이 WWW이다. 넷스케입이나 익스플로러는 이런 하이퍼텍스트를 인터넷 상에서 뒤지는 (browsing) 도구이다. WWW는 유럽의 CERN(핵물리 연구소, 소립자 연구가 활발하다)을 중심으로 개발되어 발전되었다.

미국의 TCP/IP 기반 인터넷 기술이 유럽에 들어 가면서, 세계 각처의 과학자들을 엮어 협동 연구를 하고, 연구 문서 교환을 원활히 하기 위해 1989년 팀 버너스-리가 제안하고 주도하여 WWW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온 인터넷을 웹이 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다.

1995년 10월 24일 미국 연방 네트워킹 평의회(FNC, Federal Net-working Council)는 인터넷 (Internet) 이란 용어의 정의를 결의한다. 문자적으로 보면 소문자 i로 시작하는 인터넷에서 대문자 I로 시작하는 인터넷으로 바뀐 것이지만,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네트워크와 네트워크의 상위 개방형 연결 형태를 지칭하던 것에서 거대한 통신망의 실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인터넷은 1992년 체제를 갖춘 ISOC (Internet Society)에 의해 운영된다고 보면 된다. ISOC에는 IAB(Inter-net Architecture Board)와 IETF(Internet Engineering Task Force) 두 개의 주요 조직이 있는데, IAB는 교회의 당회에 해당하는 조직이고, IEFT는 집사회에 대응된다. 프로토콜 표준화와 같이 기술적인 내용을 IETF가 연구하여 결정하면, IAB에서 이를 인정하고 널리 쓰이게 한다.

미래의 인터넷은 어떤 모습일까? 미래 사회의 기술 주역은 컴퓨터, 통신, 이동성, 멀티미디어 (Computer, Communication, Mobility, Multi-media) 이렇게 네 개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CCMM으로 기억하면 잊지 않는다. 컴퓨터와 통신의 기술은 이미 결합된 지 오래고, 계속 발전할 것이다. 사용자들은 움직이며 통신하며, 컴퓨터를 사용하기 원하고 있다. 발달된 통신망에는 문자위주의 정보뿐만 아니라 목소리, 음악, 영상, 동영상 등의 멀티미디어 정보들을 주고 받기를 원하고 있다.

요즘 휴대폰에는 이런 요소들이 이미 다 들어와 있다. 휴대폰은 무선 통신 능력이 있는 일종의 컴퓨터이다. 언제, 어디에서든지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CCMM 체계가 발달되고 있으며, 인터넷이 그 하부구조를 이루고 있다. 더 나아가 TV, 냉장고, 주방기구, 세탁기와 같은 가정의 모든 가전 제품들과 수도, 가스, 전기 관련 기기들도 인터넷에 연결되는 날이 올 것이다. 집 밖에서 거실의 에어컨을 작동시켜 들어 갔을 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게 하고, 조리 기구를 가동시키고, 원하는 TV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우유가 없으면, 냉장고 문에 붙은 컴퓨터 화면을 통해 인근 수퍼에 배달 주문을 인터넷으로 보낼 수 있다. 수도, 전기, 가스 검침원은 역사 기록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많은 일이 실세계의 일과 연결되어 진행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현실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진행했던 일이 인터넷 상에서 간단히 해결된다. 인터넷 뱅킹이 대표적인 예이며, 이미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인터넷 뱅킹의 극단을 생각해 보면, 돈의 개념에 중요한 변화가 오게 된다. 사이버 머니는 형태는 없지만, 구매력을 지닌 엄연한 돈의 한 형태이다.

인터넷을 통한 서비스 제공, 전자 상거래, 사이버 머니를 이용한 결재 등은 세상을 변화시킬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꽃인 돈의 모습과 흐름 과정을 통째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제대로만 된다면, 가진 자들이 돈 갖고 장난 치는 일과 탈세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에는 완벽한 것이 없기 때문에 또 어떤 허점이 발견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CCMM 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의 확산이 밝은 미래만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보안, 개인 정보와 사생활 보호, 윤리적 문제 등이 벌써 문제 되고 있다. 과거에는 집 문 단속만 잘하면 안심하고 잘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누가 내 컴퓨터에 침투하여 내 은행 계좌 번호를 알아내어 돈을 빼가지 않는지, 내 사적인 중요한 정보를 빼내가지 않았는지, 어제 작성한 보고서를 적대적 관계에 있는 회사에서 빼내가지 않았는지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자녀들이 게임 중독에 걸리지 않았는지, 불건전한 채팅에 빠져 있지 않는지, 포르노물에 빠져 있지는 않나 걱정해야 한다.

인터넷은 군사적인 동기와 목적으로 시작되어, 대학과 연구 기관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상업화를 통해 대중 일반에게 활짝 열렸다. 그 중심에는 협업 (collaboration) 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깃들여 있다. 발전 단계에서도 그랬고, 현재 사용하는 목적도 그렇다.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데 유용한 매체이다. 모이기를 힘쓰는 데에도 아주 유용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 바벨탑일 수도 있고, 아직 정복되지 않은 가나안 땅일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 땅끝까지 복음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이버 공간까지 의미하셨을까 궁금해 진다. 답을 듣지 않아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들어가 싸워 점령해야 하는 우리의 지경으로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음란한 세력과 우상 숭배자들과 한판 승부를 내야 하는 곳이다.

복음 전파의 강력한 매체로서 활용해야 한다. 정보 인프라가 없는 국가는 경쟁력이 떨어져 도태될 수 밖에 없음을 세계의 지도자들은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어떤 나라의 지도자들이라도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 인프라를 수용하는 데 이견이 없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의견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정치 경제 문제 때문에 인터넷을 무시 못 할 것이다. 할렐루야! 인터넷을 타고 국경을 넘을 때에는 비자가 필요 없다.

인터넷 위에 구축되고 있는 가상 현실 세계와 실세계가 점점 구분이 없어지고 있는 이 때에 우리의 선교적 사명을 위해 과감히 사이버 공간을 침노해야 할 때가 무르익었다. 

2014년 8월 27일 수요일

웹이 죽어가고 있다.


“개방적이고평등한웹이죽어가고있다”


웹이 죽어가고 있다.
월드와이드웹이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음이 계속 울리고 있다. 1990년 12월 평등주의를 기초로 탄생한 웹은 점차 덜 개방적이고 폐쇄적인 인터넷의 생태계로 편입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웹의 창시자 팀 버너스 리도 경고 메시지를 더욱 강한 톤으로 내뱉고 있다.
‘가디언’은 8월24일 ‘어떻게 웹은 자신의 길을 잃어버리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장문 기사를 내보냈다. 크리스 앤더슨, 찰스 리드비터, 팀 버너스 리의 최근 발언들을 인용해 위기에 처한 웹의 현재를 집중 조명했다. 웹의 개방성, 평등성을 위협하는 다양한 사례도 제시됐다. 하필 그 핵심에 페이스북이 놓여있었다.
팀 버너스 리(출처 : 위키피디아)
팀 버너스 리(출처 : 위키피디아)
1990년 겨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탄생한 월드와이드웹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떤 누구와 언제 어디서든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것이 웹의 정신이었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그 정신은 지켜져왔다. 웹의 정신은 풀뿌리에서부터 공감을 얻으며 전 세계로 확장하는 토대가 됐다. 팀 버너스 리는 웹의 성장할 수 있도록 가장 큰 동력으로 ‘평등성’을 꼽았다.
“웹은 강력한, 그리고 유비쿼터스적 도구로 진화해왔다. 그것은 평등주의적 조건 위에서 구축됐기 때문이고,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의 부분으로서 수천명의 개인과 대학, 기업이 독립적이면서도 함께 작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디언’은 웹의 평등주의 정신이 서서히 뒤로 밀려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웹이 가져다줄 긍정적인 미래의 잠재력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고도 했다. 웹에서 여성 혐오주의가 확산되고, 보복성 포르노와 같은 악성 범죄가 늘어나고 있으며 기업과 정부의 감시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뿐만 아니라 인종주의를 비롯해 각종 부정적인 글들이 넘쳐나는 현실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상황에 왔다고 말한다.
모바일의 확산도 웹엔 위기 요소다. 크리스 앤더슨의 말처럼 “우리는 웹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웹이 개방과 평등을 상징한다면 모바일은 준폐쇄적 인터넷이라는 공간적 의미를 지닌다. 웹만큼 열려있지 않고 평등하지도 않다. 모바일 시대로의 전환은 웹의 위축을 가져오고 있고, 그러한 경향성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그것이 크리스 앤더슨이 말하는 ‘웹의 죽음’이다.
특히 ‘가디언’은 웹과 페이스북을 대척점에 세워놓았다. 페이스북의 감정조작, 감시 시스템, 광고 모델 등은 웹의 정신과 배치된다는 의미에서다. 런던북리뷰의 편집자인 토마스 존슨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페이스북의 이용자가 아니라 페이스북의 상품일 뿐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웹 창시자마저도 페이스북에 경고
최근에는 팀 버너스 리도 페이스북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그는 인터넷닷오아르지를 추진하고 있는 페이스북을 향해 “페이스북닷컴으로만 가게 하는 휴대폰을 만들 엄두도 내지 마라”고 경고했다. 인터넷닷오아르지는 마크 주커버그가 “연결이 곧 인권”이라는 명분으로 추진 중인 저개발국 인터넷 연결 프로젝트다. 페이스북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통신사들과 협력하고 있다.
현재의 웹은 분명 팀 버너스 리가 의도했던 방향과는 멀어지고 있다. 모든 기술이 설계자의 의도대로 진화하진 않지만, 지금의 웹은 초기의 정신과는 상반된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어 우려를 증폭시킨다. 오죽하면 팀 버너스 리가 “웹이 조지 오웰의 우려 이상으로 감시를 촉진시키는 기술이 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을까. 지금 웹이 처한 위기 상황을 대변하는 씁쓸한 풍경이다.
http://www.bloter.net/archives/203986
블로터닷넷 매거진 팀장입니다. 이메일은 dangun76@bloter.net 트위터는 @dangun76 을 쓰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다양한 피드백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웹은 죽지 않았다. 아직은

‘아직’은

웹은 죽지 않았다. 아직은 
“웹은 죽었다”.
‘인터넷에서 작은 수요들이 합쳐 큰 시장을 이루고’, 그것이 아마존 등 소위 웹 2.0 기업의 성공을 도왔다는 ‘롱테일’의 저자 크리스 앤더슨. 그는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와이어드’에 지난 8월 17일 위와 같은 도발적 제목의 글을 실었다. 해당 글은 그 제목의 선정성 만큼이나 발표되자 마자 미국 언론계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국내 언론도 이를 소개한 바 있다.
웹이 죽었다는 근거는 1990년대 들어 웹 브라우저 붐을 타고 급상승하던 웹의 트래픽이 2000년대를 지나면서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해 2010년에는 약 23%를 기록한다는 것이다.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이 이제는 모바일, 태블릿 PC 혁명으로 성장한 ‘앱’ 뿐만 아니라 구글, 페이스북 등이 구축하고 있는 자체 콘텐츠 소비 플랫폼에게 인터넷에서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웹’에 대한 ‘앱’의 위협에 앞서 구글, 페이스북 등의 자체 콘텐츠 소비 플랫폼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 주장의 배경은 근거리 통신망인 이더넷을 발명한 밥 멧칼프의 ‘멧칼프의 법칙’ 때문이다. 이 법칙은 ‘네트워크의 효용성은 이용자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데, 이 틀에서 보면 네트워크 경제에서 ‘규모의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이용자 수가 2배 많다는 것은, 2배가 아니라 4배 더 가치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구글이 ‘개방’성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오픈’을 독점해 온라인 광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 그리고 그 구글의 최대 라이벌로 부상하고 있는 페이스북의 5억 이용자가 갖는 진정한 위력이 무엇인지 이해가 된다.
물론, 여기서 ‘왕의 귀환’에 성공한 스티브 잡스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과거 PC 대전에서 MS와 IBM의 공동 전선에 밀려 할리우드로 유배당했던 잡스는 그 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캘리포니아의 남과 북,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를 융합할 수 있는 지혜를 축적했다. 그 내공으로 선보인 것이 전설의 ‘아이’시리즈의 선두를 차지한 ‘아이팟’이었다.
그러나 아이팟으로 MP3 시장을 석권한 신화의 근본은 ‘아이튠즈’에 있었다. 미디어 산업계는 냅스터(Napster), 카자(Kazza) 등 P2P 파일공유 사이트들과의 전쟁에 힘이 빠졌고, 공짜이긴 하지만 질이 떨어지는 자료들 사이를 뒤지고 다녀야 하는 P2P 소비자들이 지쳤다는 것을 잡스가 제대로 읽었기 때문이다. 잡스는 그 사이에서  정보재 거래를 위한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균형점’을 ‘아이튠즈’로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튠즈’ 모델은, 아이폰의 ‘앱스토어’ 모델을 통해서 음반 시장을 넘어 통신 시장으로 확대되었고, 이제는 ‘아이패드’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출판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마찰없는 경제’인 인터넷의 폭팔적 잠재력은 누구나 가늠하고 있었지만, 그 것이 어떻게 기존 산업계를 뒤엎을 ‘파괴적 혁신’으로 등장할 지는 누구도 쉽게 그 답을 내놓지 못했는 데, 그 답을 돌아온 황태자 스티브 잡스가 제시한 것이다.
콘텐츠 공급자에게 던지는 잡스의 충고는 이것이다. “수익성을 원한다면, 이제는 웹을 버리고 앱으로 오라.”
사실 그 선택이 매력적인 것은 이용자도 사실이다. 더 적은 시간을 들여, 더 안전하게, 원하는 기능과 서비스가 충족될 수 있다면, 굳이 앱이 아니라 웹을 쓸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웹’이냐 ‘앱’이냐가 아니라 ‘더 큰 효용’이기 때문이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함께 손을 잡고 추는 춤이니, 웹에서 앱으로의 역사적 이동은 환영할 만한 일인 것 같다. 그러나 먼저 이 이동이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직’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첫째, 앤더슨이 “웹은 죽었다”고 선포한 당일 반박문을 기고한 뉴욕타임즈의 닉 빌톤도 지적한 것처럼, 앤더슨은 통계 자료를 잘못 해석했다. 인터넷 트래픽에서 웹의 비중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그 동안 인터넷 전체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 ‘이용 행태’도 획기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감지해야 한다. 즉, 인터넷 상 웹의 이용 ‘비율’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동안 웹의 절대 ‘사용량’도 증가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용 형태’면에서 볼 때, 잡스가 아이튠즈, 앱스토어 모델을 통해 온라인 정보재 거래의 새로운 경제적 균형점을 만들어 준 덕분으로 P2P에 대한 이용 비율이 감소하긴 하지만, 대신 ‘비디오 이용률’이 급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용자들이 웹보다 앱을 더 이용함에 따라 웹의 영향력이 감소할 것’이라는 앤더슨의 주장에서 맹점을 찾을 수 있다.
그 맹점을 찾기 위해 먼저 이 비디오 콘텐츠 증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자. 앤더슨이 해당  글에서 주요 논거로 사용했던 멧칼프 이론의 창시자 밥 멧칼프는 비디오 콘텐츠가 인터넷에서 공유되는 것을 다음 세기 인터넷의 가장 주요한 변화로 주목한 바 있다.
그 이유는 간명하다. 주로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 공유를 목적으로 하던 인터넷이 기술 혁신에 힘입어 음성을 넘어 이제 비디오를 주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인터넷은 기존의 방송, 음반, 출판 등 콘텐츠 유통망을 모두 통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부각되고 있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이 출판시장이나 TV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이같은 IT와 미디어, 그리고 문화산업을 통합할 인터넷의 잠재성 때문이다.
앤더슨은 또 IT와 미디어, 그리고 문화산업 통합이라는 인터넷의 미래에 대해서 과거 미디어 산업의 공룡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현재 주요한 플랫폼을 쥐고 있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도 동일한 ‘독점적 형태’를 보일 것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그들이 ‘독점적 형태’를 보임에 따라 인터넷은 ‘웹’의 천하통일이 무너지고, 수 개의 플랫폼으로 분할되어 통치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이용자 수에 따라 네트워크의 효용성이 제곱으로 증가한다는 맷칼프의 법칙에도 불구하고, 초기 인터넷 제왕이었던 야후 이래 인터넷은 수없이 그 승자를 갈아치워온 날카로운 경쟁의 무대였다. 애플을 제외한 구글, 페이스북 등은 다 인터넷의 새로운 강자들이다. 잡스 이후의 애플,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위협적인 서비스를 내놓지 못한 구글, 끓임없이 새로운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페이스북 역시 미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전통적인 미디어 산업의 공룡들은 ‘콘텐츠’ 뿐만 아니라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었는 데, 그 플랫폼의 ‘성격’이 다르다.  예컨대, 방송망, 전화망 등은 가입자가 쉽게 이탈할 수 없는 ‘물리적’ 환경이다. 그리고 초기에 그 같은 ‘망’ 구축에 상당한 비용 투자가 요구되기 때문에 자본금이 빈약한 신생기업이 덤빌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구글,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 기반이 되는 인터넷은 다르다. 인터넷 위에 또 다른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용자들을 강력하게 구속하기는 어렵다. <인터넷 권력전쟁>(Who Controls the Internet)의 저자이자 콜롬비아 로스쿨 교수인 팀 우가 지적한 것처럼, 인터넷은 초기 인터넷 아버지들의 ‘망 중립성’(Net Neutrality) 원칙에 따라서 ‘모든 콘텐츠를 동일하게’ 취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에 수 억의 이용자를 보유한 온라인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다른 인터넷 서비스가 만들어내는 콘텐츠와 본질적인 차별성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둘째, <인터넷의 미래 그리고 어떻게 그 것을 멈출 것인가>(The Future of the Internent and How to Stop It)의 저자이자 하버드 로스쿨 교수인 조나단 지트레인이 지적한 것처럼, PC가 인터넷 생태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인터넷은 과거 미디어의 행태를 답습하기는 어렵다. PC는 일반적 목적(general purpose)에 따른 ‘열린 창조성’(generativity)을 가진 기계이기 때문이다. 즉,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된 PC는 제품 설계자가 설계한 목적 이외에 다른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초의 킬러 어플리케이션이었던 이메일을 비롯해 웹 등 수많은 기술적, 사회적 혁신이 나올 수가 있었다. 따라서 이 PC 기반의 인터넷 생태계가 보존되는 한, 인터넷은 여전히 새로운 미래에 열려 있고, 인터넷의 개방성이 유지되는 한 웹은 다를 것이다.
사실 이러한 특성이, 지난 수 년 동안 인터넷 강자들이 독점적 플랫폼을 만드려는 것을 막아왔다. 구글, 페이스북은 과거의 전기, 수도, 철도와 같은 인프라가 ‘유틸리티’가 된 것 처럼 자신들의 서비스를 유틸리티화함으로써 인터넷 환경에서 자신들의 사업 안정성을 높이려 한다. 그러나 전기, 수도, 철도와 IT 인프라가 같을 수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PC 기반 인터넷 생태계는 ‘이용자 활용력’에 따라 ‘그 응용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틸리티가 되더라도, 그것은 이용자를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고, 이용자를 배제할 수 없다면, 그 이용자들이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을 원하는 한,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웹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이란 수식어가 필요하다.
웹을 죽이는 방법은 있다. 웹의 지속적 혁신성을 지켜주고 있는 기본 아키텍처의 핵심들을 무너뜨리면 된다. 그리고 그 일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먼저 “모든 콘텐츠는 넷상에서 동일하다”는 ‘망중립성’의 원칙을 깨고 인터넷 콘텐츠, 서비스 영역의 강자가 인터넷망을 제공하는 업자들과 거래를 맺는 것이다. 망은 앞서 말한 진입 장벽이 높은 사업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나 독점 내지 과점 상태다. 미국은 AT&T와 버라이존으로 양분되어 있고, 한국은 KT다. 인터넷 기업이 진정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을 배제한 새로운 플랫폼을 원한다면 망 사업자와의 제휴가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들의 독점력을 빌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구글이 버라이존과 추구한 모바일 웹에 망 중립성을 배제하려는 시도를 한 바가 있다. 유튜브 콘텐츠의 전송 우선권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그 복중의 계산으로 추측된다.
다음으로는 지금의 PC 단말기(end-point)가 기반이 된 웹 생태계를 모바일, 태블릿 단말기 기반 생태계 혹은 닫힌(lock-in) 단말기 생태계로 대체하면 된다. 애플의 iOS 진영과 구글의 안드로이드 진영이 맞서고 있는 스마트폰 전쟁의 불이 꺼지지 않고, 아마존의 전자책 판매고가 종이책을 추월하고, 139달러짜리 보급형 킨들을 발표하고, 아이패드가 없어서 못 파는 현상이 지속되면 이 ‘대체의 미래’는 멀지 않은 내일일 것이다. 이것은 IT 인프라가 전기, 수도, 철도와 크게 ‘다를 바가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소비’할 뿐, 그것을 통해서 무언가 새로운 ‘창조’를 해내는 자유를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플랫폼 안에서도 어느 정도 창조가 이루어질 수는 있으나, 적어도 온라인 상에서는 해당 플랫폼 제공자의 ‘허락’에 따른 ‘제한된 혁신’일 뿐이다.
따라서 웹은 아직 죽지 않았다. 앤더슨의 주장은 도발적이었지만, 놓친 것이 많았다. 그는 웹의 이용 비중이 감소하는 것은 제대로 짚었지만, 그 절대적 이용량은 증가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비디오 이용량 증대가 IT와 미디어, 문화산업을 융합하는 것을 암시한다는 것은 바로 봤지만, 플랫폼 구축을 통한 콘텐츠 소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기반한 플랫폼과 콘텐츠 산업의 수직 통합은 구속력이 약하다는 점을 놓쳤다. 나아가 여전히 ‘열린 창조성’(generativity)이라는 일반적 목적을 위한 단말기인 PC가 웹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있는 한 웹의 기반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무시했다.
그러나 ‘아직’일 뿐이다. 망 중립성의 원칙을 위반한 콘텐츠 제공 업체와 망 제공 업체의 결탁은, 새로운 기업이 인터넷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장벽을 높이고 있다. 모바일, 태블릿의 대량 공급과 시장 확대에 의해서 PC 중심 웹 생태계가 닫힌 단말기에 기초한 웹 생태계로 변화하고 있고 IT 인프라는 전기, 수도 등의 인프라와 유사해지고 있다.
그래서 ‘아직’ 일 뿐이다. 우리가 진정 인터넷 네트워크의 ‘망 중립성’, 인터넷 단말기의 ‘열린 창조성’(generativity) 등 오늘날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과 질서를 간과한다면 웹 죽이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는 ‘웹이 죽는다’는 사실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월드 와이드 웹(WWW)이라는 것은 1990년대에 당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재직하던 팀 버너스 리 경이 인터넷상 문서 공유의 편리를 위해 만든 어플리케이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웹은 ‘망 중립성’과 ‘열린 창조성’의 원칙이 지켜졌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된 PC라는 단말기를 통했기 때문에 팀 버너스 리는 해당 어플리케이션을 ‘허락없이’ 제조할 수 있었다. 또 그 ‘웹’ 자체가 문서의 편집과 공유를 통한 재창조에 ‘아무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불과 20년 만에 전세계로 확산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열린 창조성’ 원칙의 힘이다.
나아가 인터넷의 모든 콘텐츠는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는 ‘망 중립성’ 원칙이 웹에 그대로 적용이 되었기 때문에, 웹은 창조와 혁신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경쟁이 평등한’ 플랫폼이 될 수 있었다. 그 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구글, 페이스북 등의 신흥 강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앱이 웹을 죽인다면, 새로운 ‘소비’ 콘텐츠 플랫폼이 웹을 죽인다면, 그 것은 ‘웹의 종말’일 뿐 아니라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지속되어 왔던 ‘개방에 의한 혁신’과 ‘공유에 의한 창조’에 일퇴가 가해지는 것이다. 그들이 바꾸는 것은 웹 이후 새로운 플랫폼일 뿐 아니라, 웹을 통해 부상한 ‘창조의 패러다임’이 ‘소비의 패러다임’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웹이 죽는 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것은 웹이 죽은 후, 또 다른 웹이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애초에 막으려는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린 창조성과 망 중립성이 사라진 곳에는, 더 많은 소비를 위한 플랫폼만이 잔존할 뿐이다. 더 많은 개인 정보가 수집되고, 광고 등 상업적 목적을 위해 활용될 뿐이다. 사실, 이 것이 로렌스 레식 하버드 로스쿨 교수가 <코드와 다른 사이버 공간의 법들>(Code and the Other Laws of Cyberspace)에서 지적한 인터넷의 미래였다. 인터넷은 무한한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자유는 ‘코드’라는 ‘아키텍쳐’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으므로, 인터넷을 상업화하려는 세력이 그 ‘코드’를 변경할 경우, 자유는 충분히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현실’이다. 그 같은 ‘자유’는 ‘공기’와 같아서 막상 있을 때는 그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인터넷의, 웹의 ‘자유’를 너무 당연히 생각했기 때문에 그 것이 ‘소비’와 ‘편리’의 이름으로 감소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기’가 사라진 후에도, ‘자유’가 극히 감소한 후에도,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따라서 다시 논의의 핵심은 ‘웹의 죽음’이 아니다. 웹이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탄생과 소멸은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에 ‘또다른 웹’이 태어날 생태계가 지금의 환경이냐는 것이다.
아직 웹이 죽지 않았을 때, 인터넷의 개방성이 그 명맥을 유지할 때인 지금이 나의 인터넷을, 웹을 지키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때다.
http://www.bloter.net/archives/37161
  • 기술이라 쓰고 인간이라 읽는 정치학도. 네이버 서비스 자문위원을 맡은 적 있고, 스타트업에서 매니저로 일한 바 있다. 블로터닷넷과 주간경향 등에 IT 칼럼을 기고하고, 쓴 책으로는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 '소셜 웹 혁명','소셜 웹이다'가, 번역한 책으로는 '열린 정부 만들기' 등이 있다. 쓴 글에 대해 더 깊은 논의를 원하시는 분은 visiondesigner21@gmail.com 으로 저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면 된다.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소프트웨어가 명령한다, 레브 마노비치

    소프트웨어가 지휘한다 Software Takes Command




    소프트웨어가 지휘한다 



    레브 마노비치 지음


    서론



    미디어의 이해


    나는 컴퓨터로 가능해진 새로운 문화 형식에 관한 내 이전 책의 제목을 '뉴미디어의 언어'라고 지었다. 그 책은 1999년에 완성되어 2001년에 출판되었는데, 그 즈음에는 모든 미디어 제작 업계에서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도구의 도입을 거의 끝마쳤고, "뉴미디어 아트"는 상업 소프트웨어와 전자기기들이 채 다루지 못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대담하고 활발한 단계에 있었다.

    10년이 지난 후, 대부분의 미디어는 "뉴미디어"가 되었다. 1990년대의 발전이 널리 펴져 수억 명의 사람들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며, 10년 전 수만 달러에 달하던 미디어 저작 및 편집 소프트웨어 도구를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

    구글이 개척한 기술 덕분에 이제 세계는 영원히 베타 버전 상태에서 변화하는 웹 어플리케이션과 웹 서비스 위에서 작동되는 데 익숙해졌다. 웹 어플리케이션과 서비스는 원격 서버에서 구동되기 때문에 사용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업데이트된다. 실제로 구글은 검색 알고리듬 코드를 하루 수차례 업데이트 하고 있다. 페이스북 역시 매일 코드를 업데이트 하고 있고 때로는 부서지기도(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페이스북 사무실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신조는 “재빨리 움직여라, 무엇이든 부숴보라"이다.) 영원한 변화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이제 세계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 무거운 산업 기계가 아니라 항상 변화의 상태에 있는 소프트웨어에 의해서 정의된다.

    인문학자, 사회 과학자, 미디어 학자, 문화 비평가들이 왜 소프트웨어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그것은 문화적 산물을 제작, 저장, 배포, 접근하기 위해 사용된 21세기 이전의 다양한 물리적, 기계적, 전자적 기술 대부분을 소프트웨어가 대체했기 때문이다. 워드 프로세서 혹은 그와 유사한 오픈 소스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편지를 쓸 때, 당신은 소프트웨어를 이용한다. 블로거Blogger 혹은 워드프레스WordPress에 글을 올릴 때, 당신은 소프트웨어를 이용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글을 쓸 때, 유투브에서 동영상을 검색하거나 스크라이브드Scribd에서 글을 읽을 때, 당신은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것이다(서버 상에 존재하는 웹 브라우저를 통해 접근되는 이 카테고리의 소프트웨어는 웹 어플리케이션 혹은 웹웨어라고 불린다).

    비디오 게임을 할 때, 미술관에서 인터렉티브 설치 작품을 감상할 때, 건물을 디자인 할 때, 영화 특수 효과를 만들 때, 웹 사이트를 디자인할 때, 휴대 전화로 영화 리뷰나 영상을 볼 때, 그리고 그 밖에 다른 수천 가지의 문화 활동을 할 때, 실질적으로 이야기해서 당신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바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우리의 기억과 상상, 타인, 세계로 통하는 인터페이스가 되었다. 이것은 세계가 사용하는 보편적인 언어이자 세상이 작동하는 보편적인 엔진이다. 20세기 초기 전기와 연소 기관이 그랬던 것처럼 21세기에는 소프트웨어가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책은 "미디어 소프트웨어"에 관한 것이다. 미디어 소프트웨어는 워드, 파워 포인트,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애프터 이펙트, 파이널 컷, 파이어폭스, 블로거, 워드프레스, 구글 어스, 마야, 3D 맥스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일컫는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이미지, 동영상 시퀀스, 3D 디자인, 텍스트, 지도, 인터렉션 요소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다양하게 조합된 웹사이트, 인터렉티브 어플리케이션, 모션 그래픽, 가상 지구 등을 제작, 퍼블리쉬, 공유, 리믹스할 수 있게 해준다. 미디어 소프트웨어는 파이어폭스와 크롬 등 웹 브라우저, 이메일 및 채팅 프로그램, 뉴스 리더 그리고 미디어 컨텐츠에 접근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다른 종류의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도 포함한다.

    이처럼 미디어를 제작하고, 미디어와 인터렉션하고 이를 공유하는 소프트웨어 도구는 일반적인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웹 어플리케이션을 포함한)에 포함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도구들이 현대의 모든 소프트웨어가 갖는 공통적인 특징을 물려받았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간 디자인, 영화 특수효과 제작, 웹사이트 디자인 혹은 정보 그래픽 등 분야에 관계없이 디자인 과정에 있어서 모두 같은 논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일까? 모션 그래픽, 그래픽 디자인, 웹사이트, 제품 디자인, 건물, 비디오 게임은 모두 소프트웨어를 통해 디자인되므로,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구조적인 특징이 있는 것일까? 좀 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미디어 저작 소프트웨어의 인터페이스와 도구는 다양한 미디어 종류의 미학과 시각 언어를 어떤 방식으로 형성하는가?

    이 책에서 논의된 이러한 의문 뒤에는 다음과 같은 이론적 질문이 있다. 이것은 이 책의 서술 방식을 결정하고 주제 선정에 동기를 부여했다. 기존의 미디어 도구들이 소프트웨어를 통해 시뮬레이션 되고 확장된 이후에 "미디어"라는 것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미디어들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기나 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하나의 독자적인 단일미디어monomedium 혹은 메타미디어metamedium(이 책의 주인공인 앨런 케이Allen Kay의 용어를 빌리자면)의 새롭고 용감한 세계에 살게 된 것일까?

    요컨대, 소프트웨어 이후의 "미디어"는 무엇인가?



    “미디어”는 여전히 존재하는가?


    이 책은 미디어 소프트웨어와, 이것이 미디어의 활용과 개념에 끼친 영향을 이론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지난 이십 여 년간 소프트웨어는 19세기와 20세기에 등장한 대부분의 미디어 기술을 대체시켰다. 오늘날 이것은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이것의 역사와 발전 이면의 이론적 바탕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신은 아마도 서양 미술에 선형 원근법 사용을 대중화시킨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이름, 브루넬리스키와 알베르티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20세기 초반 영화 기법을 발명한 그리피스나 아이젠슈타인을 알 것이다. 그렇지만 포토샵이나 워드, 혹은 당신이 매일 사용하는 미디어 도구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잘 모를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도구들이 애초에 왜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디어 소프트웨어의 지적인 역사는 무엇일까? 1960년에서 1970년대 후반 사이에 오늘날 미디어 어플리케이션의 기초가 되는 대부분의 개념과 실질적인 기술을 만들어낸 주요 인물들(J. C. R. 리클라이더, 이반 서덜랜드, 테드 넬슨, 더글러스 엥겔바트, 앨런 케이,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과 그들이 주도했던 연구 단체의 생각과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발견한 것은 (이들의 글에 대한 나의 분석을 읽고 당신도 내가 처음 느꼈던 놀라움을 경험하길 바란다) 그들이 컴퓨터 엔지니어였던 동시에 미디어 이론가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들의 미디어 이론에 대해 논의하고 이후 수십년 동안의 디지털 미디어 발전에 비추어 이를 확인할 것이다. 앞으로 보게되겠지만, 이들의 이론은 오늘날 우리가 만들고, 읽고, 보고, 리믹스하고, 공유하는 데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렇다면 이제, 현대 소프트웨어 문화의 “비밀 역사”를 소개하겠다. 이것이 비밀인 이유는 그 역사가 의도적으로 숨겨졌기 때문이 아니라, 문화의 컴퓨터화가 가져온 급작스러운 변화에 흥분한 나머지 우리는 여태까지 그것의 기원을 살펴 볼 생각을 안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것이 가치있는 일임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건축사학자이자 비평가 지크프리트 기디온이 쓴 20세기의 중요 저작 <기계가 지휘한다(1947)>에서 따 온 것이다. 기디온은 빵, 육류, 냉장 등에 책의 섹션을 할애하며 산업 사회의 기계화 발전 과정을 위생 시스템, 폐기물 관리, 패션, 농업 생산 등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추적한다. 나는 훨씬 작은 범위에서, 1960년에서 2010년 사이 문화의 “소프트웨어화”(나의 신조어)의 역사적 사건들을, 이것의 발전을 이끈 최초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해서 현재의 일상적인 상황에 걸쳐 미디어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소개할 것이다.

    내 연구는 “소프트웨어 연구Software Studies”의 학문적 패러다임 내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이 기여하는 바는 미디어 소프트웨어의 등장을 가능케한 아이디어를 분석하고 이러한 종류의 소프트웨어의 수용이 현대의 미디어 디자인과 시각 문화에 끼친 영향을 논의하는 것이다.

    미디어 소프트웨어는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의 하위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라는 카테고리는 소프트웨어에 포함되는데, 소프트웨어는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시스템 소프트웨어, 컴퓨터 프로그래밍 도구,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소셜 미디어 기술 등을 포함한다).

    만약 소프트웨어를 이처럼 확장된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사회”에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프트웨어 문화”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음 섹션에서는 이에 대해 다룰 것이다.



    소프트웨어 혹은 현대 사회의 엔진


    1990년대 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소재나 제품을 생산하거나 혹은 물질적인 것들을 처리하는 것과 관련한 사업 분야의 기업이었다. 그러나 지금 가장 잘 알려진 브랜드 리스트의 상위권에는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가 위치하고 있다. (2007년 구글은 세계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적어도 미국에서는, 뉴욕 타임즈, USA 투데이, 비즈니스위크 등 가장 널리 읽히는 신문과 잡지에 페이스북, 트위터, 애플, 구글 및 다른 IT 기업들에 대한 기사가 매일 실린다.

    다른 매체들은 어떨까? 2008년에 처음 이 책을 쓰기 시작하던 무렵 나는 CNN 웹사이트의 비즈니스 섹션을 체크했었다. 웹사이트의 첫 화면에는 10개의 기업과 지수indexes에 관한 시장 분석 정보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 목록은 매일 바꼈지만 IT 브랜드는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 2008년 1월 21일의 경우를 예로 살펴보면, 그 날의 목록은 구글, 애플, S&P500지수, 나스닥종합, 다우산업, 시스코 시스템, 제너럴 일렉트릭, 제너럴 모터스, 포드 그리고 인텔이었다.

    이 리스트가 직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 제너럴 모터스, 포드 즉, 물질적인 것이나 에너지와 관련한 기업은 리스트 후반부에 나타난다. 그 앞뒤로 두 개의 IT 기업이 있는데 이들은 하드웨어를 공급하는 사업을 한다. 인텔은 컴퓨터 칩을 만들고 시스코는 네트워크 장비를 만드는 것이다. 제일 상위에 있는 두 개의 기업, 구글과 애플은 어떤가? 첫 번째인 구글은 정보와 관련한 사업을 하고 (구글은 세계의 정보를 정리하고 그것을 보편적으로 유용하고 접근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두 번째인 애플은 전화, 타블렛, 노트북, 모니터, MP3 플레이어 등과 같은 전자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사실상 이 두 업체는 공통적으로 ‘다른 어떤 것’을 만들고 있다. 그것은 미국의 경제 활동뿐만 아니라 세계의 경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를 만드는 기업들이 거의 매일 비즈니스 뉴스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아마존, 이베이, 야후 같은 주요 인터넷 기업들 역시 날마다 뉴스에 나오는데 그들 역시 같은 업종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다른 어떤 것’은 바로 소프트웨어이다. 검색 엔진, 추천 시스템, 맵핑 어플리케이션, 블로그 도구, 옥션 도구, SMS(단문 메시지 서비스) 서버 그리고 사람들이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iOS, 안드로이드, 페이스북, 윈도우, 리눅스 등의 플렛폼이 세계의 경제, 문화, 사회적 삶 그리고 정치의 한 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화 소프트웨어”는 광대한 소프트웨어 우주 중에서 눈에 보이는 일부일 뿐이다. (이것을 문화 소프트웨어라고 한 것은 이것이 문화의 “원자”를 품고 있고 수억의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내가 벤자민 브래튼과 함께 제안했지만 결국 출판하지는 못한 책 소프트웨어 사회Software Society(2003)에서 우리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과, 인문학과 사회 과학 연구에 이것이 비교적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 기술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프트웨어는 전쟁중에 목표물로 날아가는 미사일의 방향을 통제한다. 소프트웨어는 아마존, 갭, 델의 물품 창고와 생산라인을 작동시키고, 다른 수많은 기업들로 하여금 물품을 조립하고 즉시 전 세계로 보낼 수 있도록 해준다. 소프트웨어는 상점이나 슈퍼마켓의 재고를 자동으로 파악해서 진열대에 채워놓을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어떤 상품을 언제, 어디서, 얼마에 판매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소프트웨어는 인터넷을 조직하고, 이메일을 전달하며, 서버로 부터 웹페이지를 가져오고, 네트워크 트래픽을 전환하고, IP 주소를 할당하고, 웹페이지를 브라우저 상에 표시하기도 한다. 학교와 병원, 군사 기지, 과학 실험실, 공항, 도시 등 현대의 모든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시스템이 소프트웨어에 의해서 작동한다. 소프트웨어는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보이지 않는 접착제이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시스템이 각기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저마다의 목적을 갖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소프트웨어의 구문론을 공유한다. 그것은 “if then”과 “while do” 같은 제어 명령, 오퍼레이터와 데이터 종류(문자나 부동 소수점 수), 리스트 같은 데이터 구조 그리고 메뉴와 다이얼로그 박스를 아우르는 인터페이스 전통 등이다.

    전기와 연소 기관이 산업 사회를 가능케했다면, 소프트웨어는 전세계적 정보 사회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정보 사회 경제의 핵심이 되는 “지식 노동자,” “창조적 전문가Symbol Analysts,” “창조 산업,” “서비스 산업” 등은 소프트웨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데이터 시각화 소프트웨어, 재무분석가가 쓰는 스프레드시트, 글로벌 광고 회사의 디자이너가 사용하는 웹 디자인 소프트웨어, 항공사가 이용하는 예약 소프트웨어 등이 그러한 예들이다. 소프트웨어는 글로벌화 과정을 주도하기도 한다. 기업은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관리 구조, 생산 시설, 저장 및 소비 현황을 전 세계로 분배한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사회학 이론이 다루었던 현대적 존재의 모든 새로운 측면(정보 사회, 지식 사회, 네트워크 사회 등)은 소프트웨어에 의해 가능해진 것이다.


    사회 과학자, 철학자, 문화 비평가, 미디어/뉴미디어 이론가들이 사이버문화 연구, 인터넷 연구, 게임 연구, 뉴미디어 이론, 디지털 문화, 디지털 인문학 등의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내면서 지금까지 IT 혁명의 모든 면을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를 근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엔진인 소프트웨어는 비교적 주목 받지 못했다. 심지어 사람들이 휴대전화와 다양한 컴퓨터 기기로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업데이트하는 오늘날에도, IT와 이것의 문화와 사회적 영향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자, 예술가, 문화 전문가들 대부분은 소프트웨어라는 이론적인 카테고리를 보지 못하고 있다.

    몇 가지 예외는 있다. 저작권과 IP를 둘러싼 오픈소스 운동과 이와 관련한 이슈는 많은 학문 분야에서 다루었다. 그리고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이베이, 오라클 등 웹 거물들에 관한 책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 책들 중 일부는 이 기업들이 개발한 소프트웨어에 관한 통찰력 있는 논의와, 이러한 소프트웨어의 사회적, 정치적, 인지적, 인식론적 영향을 다루고 있다. (존 바텔의 책이 좋은 예이다. <The Search: How Google and Its Rivals Rewrote the Rules of Business and Transformed Our Culture.>)

    2003년 내가 소프트웨어 사회를 제안할 때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지만, 다음의 내용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셜 미디어와 크라우드소싱만 추가되었다):

    만약 우리가 디지털 문화에 관한 비평적 논의를 “오픈 액세스open access,” “공동생산peer production,” “사이버,” “디지털,” “인터넷,” “네트워크,” “뉴미디어,” “소셜 미디어” 등의 개념에 국한시킨다면, 새로운 재현 및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이면을 보지 못 할 것이고 또 이것이 진정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하는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자체를 언급하지 않는다면 원인이 아니라 결과만을 다루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컴퓨터 스크린에 나타나는 결과가 아니라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과 사회적 문화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정보 사회,” “지식 사회,” “네트워크 사회,” “소셜 미디어,” “온라인 협업,” “크라우드소싱” 등 현대적 존재의 모든 새로운 측면은 소프트웨어에 의해 가능해졌다. 이제 소프트웨어 자체에 주목할 때다.

    노아 와드립-프루인은 그의 저서 <Expressive Processing(2009)>에서 디지털 문학 관련 서적들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이러한 책들 거의 대부분이 디지털 미디어 기계의 외형이 어떻게 생겼는지에만 집중했다... ...관점에 상관없이, 디지털 미디어에 관한 글들은 결정적인 어떤 것을 간과했다. 그것은 디지털 미디어가 작동하게 만드는 실질적인 과정들, 디지털 미디어를 가능케 하는 컴퓨테이셔널computational

    기계들이다.” 내 책은 오늘날 이러한 “기계들”의 핵심 부분이 되는 것(이것이 대부분의 사용자가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보게 되는 유일한 부분이기 때문에)에 관해 다룬다. 그것은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이다.



    소프트웨어 연구는 무엇인가?


    이 책은 “소프트웨어 연구”의 학문적 패러다임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소프트웨어 연구는 무엇인가? 몇 가지 정의가 있는데, 첫 번째는 내가 아는 한 “소프트웨어 연구,” “소프트웨어 이론”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나의 책 <뉴미디어의 언어>에서 볼 수 있다. “뉴미디어는 1950년대 로버트 이니스와 마셜 맥루언의 혁명적인 업적에서 기원하는 미디어 이론의 새로운 단계를 필요로 한다. 뉴미디어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과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해진 미디어를 위한 새로운 용어, 카테고리, 작동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미디어 연구로부터 소프트웨어 연구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이동해야 한다. 미디어 이론에서 소프트웨어 이론으로.”

    지금 다시 읽으니 어느 정도는 수정이 필요한 것 같다. 위에서는 컴퓨터 과학이 소프트웨어 사회에서 문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해줄 수 있는 일종의 절대적 진실인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컴퓨터 과학은 그 자체로 문화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소프트웨어 연구는 현대 문화 안에서 소프트웨어의 역할과, 소프트웨어 자체의 발전 양상을 만들어내는 사회 문화적 힘에 대해서 탐구해야 한다.

    이것의 필요성을 종합적으로 다룬 책은 노아 와드립-프루인과 닉 몬트포트가 편집한 <뉴미디어 리더New Media Reader>이다. 이 획기적인 책은 문화의 역사와 관련하여 소프트웨어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체계를 제시했다. 비록 “소프트웨어 연구”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소프트웨어를 어떤 방식으로 고찰할지에 대한 모델을 제안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문화 컴퓨팅의 선구자들의 글과, 예술가와 작가들의 글을 조직적으로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큰 틀에서 양측모두 같은 지적 체계에 속해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즉, 종종 동일한 아이디어가 독립적으로 문화 컴퓨팅을 발명하고 있던 예술가와 과학자에 의해서 동시에 개발되었다. 예를 들어, <뉴미디어 리더>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과 바네바 부시의 글로 시작하는데 둘 모두 데이터 정리와 인간 경험을 기록하는 방법으로서 가지 뻗는 구조에 대한 아이디어를 담고있다.

    문화로서 소프트웨어에 관한 선구적인 책 <Behind the Blip: essays on the culture of software(2003)>을 출판했던 매튜 퓰러는 2006년 1월 로테르담의 피에 츠바르트 학교Piet Zwart Institute에서 최초의 소프트웨어 연구 워크샵을 열었다. 인사말에서 퓰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컴퓨테이셔널하고 네트워크 된 디지털 미디어를 이론화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서 소프트웨어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미디어 디자인의 근간이며 ‘질료stuff’이다. 어떤 면에서 현재의 모든 학문적 작업은 ‘소프트웨어 연구’이다. 소프트웨어는 이를 위한 미디어와 맥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학적 측면을 제외하고 소프트웨어의 구체적 본질, 물질성에 대한 연구는 매우 드물다.”

    나는 “지금의 모든 학문적 작업은 ‘소프트웨어 연구’이다”라는 데 있어 퓰러와 전적으로 동의한다. 비록 지식인들이 그것을 깨닫기 까지는 얼마 간의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말이다. 이를 돕기위해 매튜 퓰러와 노아 워드립-프루인 그리고 나는 2008년 MIT 출판사에 책 시리즈, 소프트웨어 연구Software Studies를 설립했다. 그 중 이미 출판된 책은 퓰러가 편집한 <Software Studies: A Lexicon(2008)>, 와드립-프루인의 <Expressive Processing: Digital Fictions, Computer Games, and Software Studies(2009)>, 웬디 휘 경 전의 <Programmed Visions: Software and Memory(2011)>, 롭 키친과 마틴 다지의 <Code/Space: Software and Everyday Life(2011)>, 지오프 콕스와 알렉스 매클린의 <Speaking Code: Coding as Aesthetic and Political Expression(2012)>가 있다. 2011년 퓰러는 출판과 논의를 위한 플랫폼으로 영국의 연구자들과 함께 온라인 학술지, <컴퓨테이셔널 문화Computational Culture>를 만들었다.

    그 밖에 플랫폼 연구, 디지털 인문학, 사이버문화, 인터넷 연구, 게임 연구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들이 점점 더 많이 발간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중 많은 책들이 소프트웨어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돕는 중요한 통찰과 논의를 담고 있다. 그 전부를 나열하는 대신에, 플랫폼 연구와 디지털 인문학에 관련한 책들 중 일부를 소개하겠다 (당신이 이 책을 읽고 있을 즈음이면 더 많은 책들이 출판되고 있을 것이다). 플랫폼 연구에 관한 책으로는 닉 몬트포트와 이안 보고스트의 <Racing the Beam: The Atari Video Computer System (2009)>, 지미 마허의 <The Future Was Here: The Commodore Amiga (2012)>이 있다. 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책은 다음과 같다. 매튜 G. 커센바움의 <Mechanisms: New Media and the Forensic Imagination (2008)>, 데이비드 베리의 <The Philosophy of Software: Code and Mediation in the Digital Age (2011)>, 스테판 램지의 <Reading Machines: Toward an Algorithmic Criticism (2011)>, 캐서린 헤일즈의 <How We Think: Digital Media and Contemporary Technogenesis (2012)>. 그리고 “포맷 연구”라는 새로운 영역에 관한 최초의 서적인 조나단 스턴의 <MP3: The Meaning of a Format (2012)>도 관련이 깊다.

    소프트웨어 시스템의 역할과 기능의 이해와 관련한 또 한무리의 책은 컴퓨터 과학 전공자이면서 동시에 문화 이론, 철학, 디지털 예술 혹은 다른 인문학 분야에 익숙한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다. 피비 센거스Phebe Sengers, 워런 색Warren Sack, 폭스 해럴Fox Harrel, 마이클 마티스Michael Mateas, 폴 도리쉬Paul Dourish와 필 애그리Phil Agre가 그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카테고리로, 중요 연구실과 연구 그룹에 관한 역사적 연구에 관한 책들이 있다. 이 단체들은 근대 소프트웨어, 정보 기술의 다른 주요 분야들(인터넷 등), 소프트웨어 공학의 전문적 활동(사용자 시험 등)의 발전의 중심에 있었다. 이들에 관한 책의 일부를 시대 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케이티 해프너와 매튜 라이언의 <Where Wizards Stay Up Late: The Origins Of The Internet (1998)>, 마이클 힐지크의 <Dealers of Lightning: Xerox PARC and the Dawn of the Computer Age (2000)>, 마틴 캠벨-켈리의 <From Airline Reservations to Sonic the Hedgehog: A History of the Software Industry (2004)> 그리고 네이선 엔스밍거가 쓴 <The Computer Boys Take Over: Computers, Programmers, and the Politics of Technical Expertise (2010)>.

    그렇지만 내가 항상 꼽는 고전은 1985년에 나온 하워드 라인골드의 <사고 도구Tools for Thought>이다. 이 책이 출판된 바로 그 해에 컴퓨터와 소프트웨어가 일반화되기 시작해서 지금의 일상성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그 책은 컴퓨터와 소프트웨어가 단지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통해 다르게 생각하고 상상할 수는 새로운 미디어라는 핵심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컴퓨테이셔널한 “사고 도구”를 발명한 영웅들, J.C.R. 리클라이더, 테드 넬슨과 그들의 동료들 역시 그러한 관점을 공유한다. (오늘날 인문학과 사회 과학 분야의 많은 학자들이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이러한 시각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소프트웨어를 대학의 컴퓨터학과에서나 다루는 것으로 치부한다. 소프트웨어를 인간의 지적인 창의성이 자리하고 있는 미디어가 아니라 단지 일의 효율성만 높일 수 있는 무언가로 생각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연구를 둘러싼 지적인 활동의 양상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의 문화적 논의를 개척한 예술가들의 역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초반 예술가와 작가들은 전시회, 페스티벌, 출판 그리고 관련 작업들의 온라인 아카이빙 등의 활동을 통해 소프트웨어 예술 활동을 발전 시키기 시작했다. 이 활동의 주요 인물로는 에이미 알렉산더Amy Alexander, 인케 안스Inke Arns, 에이드리언워드Adrian Ward, 지오프 콕스Geoff Cox, 플로리언 크레이머Florian Cramer, 매튜 퓰러Matthew Fuller, 올가 고리우노바Olga Goriunova, 알렉스 맥린Alex McLean, 알렉산드로 루도비코Alessandro Ludovico, 핏 슐츠Pit Schultz 그리고 알렉세이 슐긴Alexei Shulgin 등이 있다. 2002년 크리스티안 폴Christiane Paul은 예술적인 코드code에 관한 전시인 CODeDOC를 휘트니 뮤지움에서 개최했다. 2003년 디지털 예술 행사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코드”를 그 해 주제로 선택했다. 그리고 트렌스미디알레 페스트벌은 2001년부터 “예술적 소프트웨어”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심포지움에서 중요하게 다뤘다. 일부 소프트웨어 예술 프로젝트는 새로운 문화, 사회적 산물로서 코드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고, 상업 소프트웨어에 대한 비평적 활동도 있었다. 이에 대한 예로서, 에이드리언 워드는 기존의 전문적 그래픽 디자인 프로그램에 대응하는 실험적이고 반자율적인 생성 소프트웨어 예술, 오토 일러스트레이터Auto-Illustrator를 만들었다.

    소프트웨어 연구의 일부가 다수의 책과 예술 프로젝트에 걸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퓰러는 MIT 출판사 소프트웨어 연구 시리즈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소프트웨어는 명백하면서도 동시에 눈에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현대의 삶에 경제적, 문화적, 창조적, 정치적으로 깊게 녹아들고 있다.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그리고 이것을 통해 만들어지는 활동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지만 소프트웨어 그 자체에 관한 고찰은 기술적인 것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인문학과 사회 과학 분야의 예술가, 과학자, 기술자, 해커, 디자이너, 학자들은 자신이 직면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확장된 이해가 필수적이란 것을 점차 알아가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이해를 위해서는, 컴퓨팅과 뉴미디어 역사에 관한 글을 읽거나, 다채로운 소프트웨어 문화에 참여하거나 혹은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근본적으로 여러 학제간 협업인 컴퓨테이셔널 능력computational literacy의 발전에 참여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소프트웨어 연구의 근간을 형성한다.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A. Kittler, 피터 웨이벨Peter Weibel, 캐서린 헤일즈Katherine Hayles,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마누엘 카스텔Manual Castells, 알렉스 갈로웨이Alex Galloway를 비롯한 주요 미디어 이론가들의 초기 작업들 역시 소프트웨어 연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패러다임이 최근에야 명시적으로 명명되었을 뿐이지 이미 수년간 존재해왔다고 믿는다.

    퓰러는 2006년 로테르담 워크샵 소개말에서 다음을 언급했다. “소프트웨어를 예술 이론, 디자인 이론과 인문학, 문화 연구와 과학 기술 연구, 그리고 새롭게 등장하는 컴퓨터 과학 연구 등 분야의 연구 대상으로 볼 수도 있고, 활동 영역으로 볼 수도 있다.” 새로운 학문 분야는 독창적인 연구 대상이나 연구 방법 혹은 그 둘의 결합 등을 통해 정의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연구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퓰러는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학문의 대상은 기존 학문의 바탕 위에서 이미 존재하는 방법을 통해 연구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행위자 연결망 이론, 사회 기호학, 미디어 고고학 등.

    이 관점을 뒷받침하는 이유들이 있다. 나는 소프트웨어를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에 스며들어 있는 하나의 층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제어, 커뮤니케이션, 재현, 시뮬레이션, 분석, 의사 결정, 기억, 시각, 글쓰기, 인터렉션 등과 같은 현대의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소프트웨어 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 디자인, 예술 비평, 사회학, 정치 과학, 예술사, 미디어 연구, 과학 기술 연구 등 현대의 사회와 문화에 관련한 모든 분야에서, 그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소프트웨어의 역할과 효과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동시에, 우리가 소프트웨어 그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존 소프트웨어 연구 활동들이 보여주었다. 즉, 소프트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해보는 것이 이에 관한 연구 주제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사회 문화에 있어 소프트웨어의 역할에 관해서 체계적으로 기술한 모든 지식인들이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혹은 문화 프로젝트나 소프트웨어를 만들거나 가르치는 활동에 참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 제이 볼터Jay Bolter, 플로리언 크레이머Florian Cramer, 웬디 전Wendy Chun, 매튜 퓰러Matthew Fuller, 알렉산더 갈로웨이Alexander Galloway, 캐서린 헤일즈Katherine Hayles, 매튜 커센바움Matthew Kirschenbaum, 기어트 로빈크Geert Lovink, 피터 루넨펠드Peter Lunenfeld, 에이드리언 매켄지Andrian Mackenzie, 폴 밀러Paul D. Miller, 윌리엄 미첼William J. Mitchell, 닉 폰트포트Nick Montfort, 자넷 머레이Janet Murray, 케이티 살렌Katie Salen, 브루스 스털링Bruce Sterling, 노아 와드립-프루인Noah Wardrip-Fruin, 에릭 짐머만Eric Zimmerman 등이 그 예이다. 반대로, 마누엘 카스텔Manual Castells,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 폴 브릴리오Paul Virilio, 지그프리드 지린스키Siegfried Zielinski 처럼 기술적 참여 경험이 없는 학자들은 현대 미디어와 기술에 관한 이론적으로 정밀하고 영향력있는 자신들의 기록에 소프트웨어를 포함하지 않았다.

    2000년대에는 미디어 아트, 디자인, 건축, 인문학 분야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작업에 프로그래밍이나 스크립트를 사용하는 것이 점차 많아졌다. 1999년 뉴미디어의 언어에서 내가 처음 “소프트웨어 연구”를 언급했을 때보다는 증가했다. 학문과 문화 산업 이외의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 이것에는 액션 스크립트Action Script, PHP, 펄Perl, 파이선Python, 프로세싱 Processing과 같은 프로그래밍, 스크립트 언어의 등장이 크게 작용했다. 또한 2000년대 중반 웹 2.0 기업들이 내 놓은 API도 중요한 요소이다. (API는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의 약자로, 누구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기존 어플리케이션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구글 맵 API를 사용해서 개인 웹사이트에 구글 맵이 작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러한 프로그래밍, 스크립트 언어와 API가 프로그래밍을 더 수월하게 만든 것은 아니다. 더 효율적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자바Java를 사용했더라면 훨씬 긴 코드를 사용해야 했을 것과 반대로 프로세싱에서는 수 십줄의 코드만 써서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보다 쉽게 프로그래밍에 접근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몇 줄이면 구글 맵의 모든 기능을 개인 웹사이트에 추가할 수 있는데, 이것은 작업에 자바스크립트를 쓰는 데 좋은 동기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소프트웨어를 만들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시장의 등장이다. 이것은 PC 시장과 달리 몇몇 큰 기업에 독점 당하지 않았다. 2012년 초의 비공식 자료에 따르면 백만 명의 프로그래머가 아이폰, 아이패드에서 작동하는 iOS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고, 또 다른 백만 명이 안드로이드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마틴 라모니카Martin LaMonica은 프로그래밍 경험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사람들이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기술에 대해서 쓰면서 어플리케이션에 롱테일 현상

    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것이 정확하게 현실로 나타났다. 2012년 9월 70만 개의 앱이 애플 스토어에 올라와 있고, 60만 개가 넘는 안드로이드 앱이 구글 플레이에 등록되어 있다.

    뉴욕 타임즈는 2012년 3월 27일 기사 “인터넷의 언어에 대한 배움의 열기A Surge in Learning the Language of the Internet”에서 “프로그래밍, 웹 구축, 아이폰 앱 개발 등을 위한 야간 강좌와 온라인 수업 시장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라고 썼다. 이 기사는 코드카데미Codecademy(인터렉티브 강좌를 통해서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온라인 학교)의 창립자 중 한명이자 프로그래밍 공부와 웹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서 설명한 자크 심스Zach Sims의 말을 인용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다. 사람들은 단지 웹을 사용하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발전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혹은 전문 프로그래머와 짧은 프로그래밍 강좌에 한 두 번 참석한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프로그래밍, 스크립트 언어가 아무리 쉽다고 해도 기존의 미디어 제작 및 편집 소프트웨어보다는 어렵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그러라는 법은 없다. 예를 들어, 1850년대에 사진 스튜디오를 만들고 사진을 찍던 것과 2000년 대에 디지털 카메라나 카메라폰의 버튼을 누르는 것을 비교해보라. 프로그래밍이 그렇게 단순해지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그렇지만 프로그래밍이 그렇게 간편해지지 못할 논리적인 이유는 전혀 없다.

    스크립트를 쓰고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비록 우리가 진정한 “롱 테일” 소프트웨어 시대와는 아직 멀리 있다고 하더라도, 소프트웨어 발전은 점진적으로 더욱 민주화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소프트웨어가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고 또 반대로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문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지 이론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소프트웨어 스튜디오”가 만들어질 때이다.



    문화 소프트웨어

    독일의 미디어 이론가이자 문학 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는 오늘날 학생들은 최소한 두 가지 소프트웨어 언어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썼다. “그래야만 현재의 ‘문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키틀러는 어셈블러 언어로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알았는데 아마도 그것 때문에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와 그것을 이용한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을 불신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키틀러는 컴퓨터의 “본질essence”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서 그 본질은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토대와 어셈블러 언어와 같은 도구가 특징짓는 초기 역사였다.

    이 책은 프로그래머, 컴퓨터 애니메이터, 디자이너, 미디어 아티스트, 교육자로서 나 자신의 컴퓨터와 관련한 경험적 역사의 토대 위에서 쓰여졌다. 이러한 내 경험은 어셈블러 언어를 사용한 프로그래밍보다는 절차적 프로그래밍이 주를 이뤘던 1980년대 초기에 시작되었다. 그 때는 PC가 소개되고, 데스크탑 출판이 등장하고 대중화가 이루어졌으며, 문학가들이 하이퍼텍스트를 사용하던 시기였다. 나는 IBM이 그들의 첫 번째 PC를 내놓았던 1981년에 모스크바에서 뉴욕으로 왔다. 내가 컴퓨터 그래픽스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83-4년 애플 IIe 컴퓨터를 이용하면서이다. 나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가 1984년 애플의 메킨토시 컴퓨터에 사용되면서 최초로 성공적인 상업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같은 해 나는 초기 컴퓨터 애니메이션 기업 중 하나인 디지털 이펙트Digital Effects에 일자리를 얻었고, 그 곳에서 3D 컴퓨터 모델링과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프로그래밍하는지를 배웠다. 1986년 나는 사진을 자동으로 변환해서 그림처럼 보이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다.1987년 1월 어도비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출시했고, 1989년 뒤이어 포토샵을 내놓았다. 같은 해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심연이 개봉했다. 이 영화는 선구적인 컴퓨터 영상 합성 기술(CGI)을 사용해서 최초의 정밀 가상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1990년 크리스마스에는 팀 버너스 리가 웹 서버, 웹 페이지, 웹 브라우저 등 현재 웹의 근간이 되는 요소들을 완성했다.

    요컨대, 10년 만에 컴퓨터는 문화적으로 비가시적인 기술에서 문화의 새로운 엔진으로 변화했다. 여기에는 하드웨어의 발전과 무어의 법칙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반 사용자들을 위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기반 소프트웨어의 등장이다. 워드 프로세서, 그림, 3D 모델링, 애니메이션, 작곡 등을 위한 어플리케이션, 정보 관리, 하이퍼미디어, 멀티미디어 저작 도구들 그리고 지구적 네트워킹 기술(웹) 등이 예이다. 쉽게 사용가능한 어플리케이션의 등장으로 1990년대의 발전을 위한 토대가 준비되었다. 이 시기에 그래픽 디자인, 건축, 제품 디자인, 공간 디자인, 영화제작, 애니메이션, 미디어 디자인, 음악, 고등 교육, 문화 경영 등의 대부분 문화 산업계가 소프트웨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내가 처음 프로그래밍을 배운 것은 1975년 모스크바의 고등학교에 있을 때였지만 내가 소프트웨어 연구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이용한 소프트웨어가 짧은 시간에 컴퓨터를 문화의 중심에 가져다 놓는 것을 목격하면서이다.

    만약 소프트웨어가 사회적 영향에 있어서 20세기의 연소 기관과 전기와 비교할 만큼 정말 중요한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종류의 소프트웨어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일반 소비자가 사용하는 “뚜렷한” 소프트웨어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의 모든 시스템과 공정에서 사용되고 있는 “희미한”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나 나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산업 자동화 소프트웨어 등과 같은 “희미한” 소프트웨어는 만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주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내가 논의할 것은 내가 전문적으로 사용하고 가르쳤던 특정한 소프트웨어 카테고리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것을 문화 소프트웨어라 부른다.

    “문화 소프트웨어”라는 용어가 이미 은유적으로 쓰인바 있지만(J.M. 벨킨J.M. Balkin의 <Cultural Software: A Theory of Ideology, (2003)>을 참고하라), 나는 말그대로 일반적으로 “문화”와 관련한 활동들을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를 지칭하는 데 사용할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가능케한 이런 문화 활동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물론 다른 방식으로도 분류하는 것도 가능하다.)

    1. 문화 산물과 인터렉티브 서비스를 제작하는 것. 이것은 아이디어, 재현물, 믿음 그리고 미적인 가치 등을 담고 있다. (뮤직 비디오 편집, 제품 포장 디자인, 웹사이트 디자인, 어플리케이션 디자인 등). 
    2. 온라인에서 그러한 산물(혹은 그 일부)에 접근하고, 그것을 첨부, 공유 그리고 리믹스하는 것 (웹에서 신문을 읽는 것, 유투브 비디오를 보는 것, 블로그 글에 댓글을 다는 것 등). 
    3. 온라인에서 정보와 지식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것 (위키피디아 글 수정, 구글 어스에 장소를 추가, 트윗에 링크를 포함시키는 것 등). 
    4. 이메일, 문자, 인터넷 전화, 온라인 채팅, 비디오 채팅, 다양한 소셜 네트워킹 기능 등을 사용하여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 
    5. 인터렉티브 문화 경험에 참여하는 것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 등). 
    6. 호감 표시나 메타데이터를 추가하는 것으로 온라인 정보 생태계에 참여하는 것 (구글 플러스에서 “+1”을 클릭하거나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 트위터에서 “리트윗”을 하는 것, 구글 검색시 자동으로 새로운 정보가 생성되는 것 등). 
    7. 이런 모든 활동들을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 도구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 (인터넷을 통해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프로세싱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것, 포토샵의 새로운 플러그 인을 만드는 것, 워드프레스를 위한 새로운 배경 디자인을 만드는 것 등). 
    이런 소프트웨어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사용자의 컴퓨터 기기에서 작동하는 독립형 어플리케이션, 서버의 소프트웨어와 통신을 통해서 작동하는 어플리케이션, P2P 네트워크 방식 등. 만약 이러한 것들이 낯설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사용하는 “문화 소프트웨어”라는 용어가 넓은 분야의 상품들과 네트워크 서비스를 포함한다는 것만 이해하면 충분하다. 이 용어가 단지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주로 사용되었던 미디어 저작 툴인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샵, 애프터 이펙트 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서버에서 구동되는 (자료에 따르면 2007년 구글은 전 세계에 백만개가 넘는 서버를 운영한다) 다수의 프로그램과 데이터베이스, 그리고 이 서비스 내에서 사용자들이 이메일을 보내고, 채팅을 하고, 비디오를 올리고, 댓글을 남기는 등의 일을 하는 데 쓰는 프로그램(“클라이언트”라고 불리는)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사용자는 twitter.com을 통해서 트위터를 이용할 수도 있고,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인 tweetdeck.com 등의 다양한 웹사이트와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해서 트위터를 이용할 수 있다).



    미디어 어플리케이션


    앞서 언급한 소프트웨어에 의해 가능해진 7가지 문화 활동 중 상위 4개 종류와 연관된 소프트웨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이를 다시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카테고리는 미디어 컨텐츠를 제작, 편집, 관리하는 것이다. 워드, 파워포인트,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 파이널 컷, 애프터 이펙트, 마야, 블렌더, 드림위버, 아파처 등과 같은 어플리케이션이 그 예이다. 이 카테고리는 이 책의 중심이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미디어 저작,” “미디어 편집,” “미디어 개발” 등의 용어로 일컫는데 여기서는 미디어 소프트웨어라고 부르겠다.

    두 번째 카테고리는 미디어 컨텐츠를 웹에서 배포, 접근, 결합(혹은 퍼블리쉬, 공유, 리믹스)하는 것이다. 파이어폭스, 크롬, 블로거, 워드프레스, 텀블러, 핀터리스트, 지메일, 구글맵, 유투브, 비메오와 같은 어플리케이션과 서비스를 생각해보라. 물론 첫번째 카테고리와 두번째 카테고리가 겹치기도 한다. 다양한 데스크탑 어플리케이션이 미디어 제작뿐만 아니라 이를 웹에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또한 웹어플리케이션에 미디어 저작, 편집 기능이 포함되어있기도 한 것이다 (예로서, 유투브에는 비디오 편집 기능이 있다). 그리고 블로그와 이메일 서비스는 새로운 컨텐츠의 제작과 퍼블리싱에 비슷한 정도로 활용되기 때문에 두 가지 카테고리의 중간에 속한다.

    현재 누구나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 혹은 “앱”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나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이 용어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다. 또한 “컨텐츠”라는 용어가 디지털 문화에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이해하고 있다고 가정하겠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몇 가지 정의 방법을 살펴보자. 먼저 미디어 소프트웨어와 소셜 미디어가 제공하는 도구를 통해서 제작, 공유, 접근 가능한 다양한 미디어 종류를 단순히 나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텍스트, 이미지, 디지털 비디오, 애니메이션, 3D 오브제, 지도 그리고 이들과 다른 미디어를 다양하게 조합한 것 등. 아니면 다양한 장르를 나누는 것으로 “컨텐츠”를 정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웹 페이지, 트윗, 페이스북 업데이트, 게임, 다중 사용자 온라인 게임, 사용자 제작 비디오, 검색 결과, URL, 지도 위치, 북마크 공유 등.

    디지털 문화는 컨텐츠를 모듈화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서, 사용자가 컨텐츠를 제작, 공유할 수 있고 또한 컨텐츠의 일부를 분리해서 재사용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을 비디오의 배경으로 사용하는 것, 코드의 일부를 웹사이트나 블로그에 사용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이 모듈성은 현대 소프트웨어 공학이 재사용 가능한 작은 부분을, 펑션function 혹은 프로시저procedure라고 불리는, 이용해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디자인하는 기본적인 원리에 대응된다.) 그러한 모든 부분적 요소 역시 “컨텐츠”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 사이, 미디어 편집을 위한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은 사용자의 컴퓨터에서 구동되도록 디자인되었다 (미니컴퓨터, PC, 워크스테이션, 이후에는 노트북). 5년이 지난 후, 기업들은 “클라우드”에서 구동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 중 일부는 서비스 제공자의 웹사이트(구글 독스, 마이크로소프트 웹 오피스)에서 사용가능하고, 일부는 미디어 호스팅 사이트나 소셜 미디어 서비스에 포함되어 있다 (포토버켓의 이미지 및 비디오 에디터). 많은 어플리케이션이 클라이언트 형태로 휴대전화(아이폰의 지도), 타블렛, TV 플랫폼에서 구동되어, 서버와 웹사이트와 커뮤니케이션한다. 이러한 플랫폼의 예로는 애플의 iOS, 구글의 안드로이드, LG의 스마트 TV 앱 플랫폼이 있다. 아이패드에 사용되는 어도비 포토샵 터치와 같이 타블렛 자체에서 구동되는 앱들도 여전히 있다. (현재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데스크탑 어플리케이션과 비교해서 웹기반 어플리케이션과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의 편집 기능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때 쯤이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바일 소프트웨어 플렛폼 발전의 결과로 “미디어 업로더”(미디어 공유 사이트에 컨텐츠를 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앱)와 같은 특정 종류의 미디어 어플리케이션(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문화 활동)의 중요성이 증가했다. 또한, 미디어 컨텐츠를 관리(피카사에서 사진을 정리하는 것 등)하고 “메타 관리 meta-managing”(관리 앱들을 관리하는 시스템. 예를 들면 자신의 블로그 리스트를 관리 하는 것 등)하는 것은 컨텐츠를 제작하는 것 만큼이나 개인의 문화적 삶에 있어서 중요한 활동이 되었다.

    이 책은 미디어 소프트웨어에 관한 것이다. 이것의 개념적 역사, 이것이 미디어 디자인 활동을 재정의한 방식, 이것으로 제작되는 미디어의 미학, 그리고 창작자와 사용자의 “미디어”에 대한 이해 등을 다룬다. 미디어 소프트웨어를 어느 카테고리에 위치시키고, 또 이것을 어떻게 세분화할 수 있을까? 미디어 소프트웨어의 정의로부터 출발해보자. 미디어 소프트웨어는 미디어 오브젝트와 미디어 환경을 제작하고 이것과 인터렉션하는 데 쓰이는 프로그램이다. 이것은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의 하위 카테고리에 속한다.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라는 용어는 데스크탑 어플리케이션(컴퓨터에서 구동되는 어플리케이션)에 모바일 앱(휴대 기기에서 구동되는 어플리케이션)과 웹 어플리케이션(웹 클라이언트와 서버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어플리케이션)이 추가되면서 그 의미가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미디어 소프트웨어는 이미지, 동영상 시퀀스, 3D 오브제, 텍스트, 지도, 인터렉티브 요소 등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미디어와 이러한 요소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젝트와 서비스를 제작, 퍼블리쉬, 접근, 공유, 리믹스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인터렉티브한 것(인터렉티브 표면surfaces과 인터렉티브 설치)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2D 디자인, 모션 그래픽, 영화 영상)일 수도 있다. 온라인 서비스들은 태생적으로 항상 인터렉티브하다 (웹사이트, 블로그, 소셜 네트워크, 소셜 미디어 서비스, 게임, 위키, 웹 미디어 그리고 구글 플레이, 애플 아이튠즈과 같은 앱 스토어들 등). 반면 사용자가 항상 컨텐츠를 추가하고 수정할 수 있지는 않고, 인터렉티브 인터페이스를 사용해서 기존의 컨텐츠를 탐색하고 이와 인터렉션한다.

    오늘날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세계 문화 산업이 미디어 어플리케이션에 의해 가능해졌음에도, 이를 위한 합의된 분류방식이 없다는 것은 흥미롭다. 위키피디아는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의 하위 카테고리로 “미디어 개발 소프트웨어,” “컨텐츠 접근 소프트웨어”(웹브라우저, 미디어 플레이어, 프리젠테이션 어플리케이션으로 나뉘어진)를 포함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유용하지만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현재 대부분의 “컨텐츠 접근 소프트웨어”는 적어도 몇 개의 미디어 편집 기능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질라 씨몽키SeaMonkey 브라우저는 HTML 에디터를 갖고 있고, 퀵타임 플레이어는 영상을 자르고 붙이는 데 사용될 수 있으며 애플의 아이포토는 사진 편집 기능을 제공한다. 반대로, 워드나 파워포인트의 경우처럼 대부분의 “미디어 개발” (혹은 “컨텐츠 제작”) 소프트웨어는 컨텐츠를 제작, 접근하는 데 동시에 사용된다. (저작과 접근 기능의 공존 현상은 소프트웨어 문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어도비나 오토데스크와 같은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 제공 업체의 웹사이트에 가보면, 이들이 자신의 제품을 분야(웹, 방송, 건축 등)에따라 나누거나 혹은 “소비자”와 “전문가” 등의 하위 카테고리로 분류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론적 도구를 활용하여 미디어 소프트웨어를 심도있게 살펴봐야 할 또다른 이유이다.

    나는 “컨텐츠,” 다시말해서 미디어 산물의 제작과 접근을 위한 미디어 어플리케이션에 집중하겠지만, 문화 소프트웨어는 정보와 지식의 공유 및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도구와 서비스, 즉 “소셜 소프트웨어” (앞선 분류에서 3, 4번 카테고리에 해당하는)를 포함한다. 검색 엔진, 웹 브라우저, 블로그 에디터, 이메일 어플리케이션, 문자 어플리케이션, 위키, 소셜 북마킹, 소셜 네트워크, 가상 세계 그리고 예측시장 등이 예이다. 유명한 서비스로는 페이스북, 구글 제품군(구글 웹 검색, 지메일, 구글 맵, 구글 플러스 등), 스카이프, 미디아위키, 블로거 등이 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로 수많은 소프트웨어 앱과 서비스가 (대게 “공유” 메뉴를 통해) 이메일, 포스팅, 채팅 기능을 포함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면에서는 모든 소프트웨어가 소셜 소프트웨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정보 관리 소프트웨어도 포함시켜야한다. 컴퓨터 기기에 포함되어서 나오는 프로젝트 관리, 데이터베이스 어플리케이션, 텍스트 에디터나 노트 앱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카테고리, 그리고 다른 모든 카테고리는 시간에 따라서 바뀐다. 예를 들어 2000년대에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자신의 미디어를 공유 사이트에 올리고, 소셜 네트워크 상의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시작하면서 “개인 정보”와 “공공 정보” 사이의 경계가 재편되었다.

    사실상 소셜 미디어, 소셜 네크워크 서비스, 호스팅 웹사이트 등은 가능한한 이러한 경계를 지우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사이트에서 사회적, 문화적 삶을 보내도록 유도함으로써, 이러한 서비스는 더 많은 광고를 팔고 더 많은 사용자들을 확보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특정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정보, 미디어, 토론 등을 나눈다면 자신 또한 그 서비스에 자연스럽게 가입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들 중 많은 서비스가 미디어 편집,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소셜 네트워킹을 위한 더 향상된 기능을 제공하면서 PC 시대에 존재했던 또 다른 경계를 없애게 되었다.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 운영체제, 데이터 사이의 경계 말이다. 페이스북은 그들의 서비스가 많은 독자적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는 완전한 “소셜 플랫폼”이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소셜 미디어의 등장과 모바일 미디어 플랫폼의 확산 이전에는 미디어 생산, 분배, 소비를 분리된 과정으로서 연구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제작 도구, 분배 기술, 접근 기기와 플랫폼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TV 스튜디오, 카메라, 조명, 편집 도구는 제작, 송출 시스템은 분배, 텔레비전은 접근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소셜 미디어와 클라우드 컴퓨팅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이러한 경계를 없앴고, 새로운 경계(클라이언트/서버, 공개적/상업적)를 만들어냈다. 소프트웨어 연구에서는 “컨텐츠,”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과 같은 용어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소셜미디어/클라우드 컴퓨팅 패러다임이 시스템적으로 이러한 용어의 의미를 바꾸고 있기 때문에 이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인터렉티브 미디어 창작을 위해서는 어느정도 컴퓨터 코드를 써야 하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환경 역시 문화 소프트웨어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아이콘, 폴더, 사운드, 애니메이션, 진동, 터치 스크린 등의 미디어 인터페이스는 그 자체로 문화 소프트웨어이다. 이러한 인터페이스가 사람들과 미디어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터렉션을 매개하기 때문이다. 다른 추가적인 소프트웨어 카테고리도 역시 이 리스트에 포함될 수 있다.

    인터페이스 카테고리는 이 책에서 특히 중요하다. 나는 소프트웨어가 사용자에게 보여지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 이것은 소프트웨어가 컨텐츠 제작, 공유, 재사용, 믹스, 관리, 커뮤니케이션를 위해서 제공하는 기능, 이러한 기능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인터페이스, 그리고 이러한 기능과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표현되어 있는 사용자, 사용자의 니즈needs 그리고 사회에 관한 가정과 모델에 대한 것이다.

    어떤 어플리케이션이 제공하는 기능은 명령어와 도구에 내포되어 있다. 이는 사용자가 특정 앱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정의한다. 이것은 자명하지만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인터페이스에 관한 중요한 점을 한가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현대 컴퓨터 기기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1980년대 원래의 GUI(아이콘, 폴더,메뉴)는 점점 확장되어 다른 미디어와 감각(사운드, 애니메이션, 모바일 기기의 인터렉션에 활용되는 진동 피드백, 음성 입력, 멀티 터치 제스쳐 인터페이스 등)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인터페이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데 “미디어 인터페이스”라는 용어가 더 적합한 이유이다. 이 용어가 윈도우, 맥 OS, 모바일 OS(안드로이드, iOS)와 같은 컴퓨터 운영체제의 인터페이스를 더 정확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사용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그래픽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미디어를 사용하는 게임 콘솔, 휴대 전화, 인터렉티브 상점, 박물관의 설치물 등의 인터페이스를 나타내는 데도 적용할 수 있다.

    앞서 문화 소프트웨어 종류를 분류하는 데 사용된 “미디어/컨텐츠” 카테고리 대 “데이터/정보/지식” 카테고리에 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사용될 다른 많은 카테고리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 두 가지를 별개의 것이라기 보다는 연속적인 동일한 차원에 있는 두 가지 지점으로 간주할 것이다. 영화는 전자에 속하고 엑셀은 후자에 속하는 예이다. 하지만 이처럼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두 곳에 동시에 해당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엑셀의 데이터를 사용해서 정보 시각화data visualization를 만든다면, 이 시각화는 두 카테고리에 모두 속하게 된다. 이것은 여전히 “데이터”이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재현되면서 우리를 통찰과 “지식”으로 이끌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사진이나 회화처럼 우리의 감각에 어필하는 하나의 시각 미디어가 된다.

    우리 사회가 이 두 종류의 용어 세트를 반대어로 생각하는 것은 미디어와 정보 산업의 역사에 기인한다. 현대 “미디어”는 18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 사이에 만들어진 기술과 기관에 의해 형성되었다. 대형 신문, 잡지와 도서 출판, 사진,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음반 산업 등이 그것이다. “데이터”는 사회 통계학, 경제학, 비지니스 관리, 금융 시장과 같은 개별 역사를 가진 몇몇의 전문 분야에서 비롯된 것이다. 데이터가 전문 영역을 떠나 사회 전반의 관심을 얻게 된 것은 21세기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데이터는 “매력적”이고 “유행하는” 것이 되었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자신의 데이터 포털(data.gov, data.gov.uk 등)을 구축하고, 데이터 시각화가 주요 미술관의 전시(MOMA의 2008년 Design and Elastic Mind 전시 등)에 포함되고, 컴퓨터 “괴짜nerds”가 헐리우드 영화(소셜 네크워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구글 애널리틱스, 페이스북, 유투브, 플리커는 사용자의 웹사이트나 미디어 공유 계정의 자세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미디어 소프트웨어의 작동(그리고 컴퓨터가 연구, 상업, 예술적 목적을 위한 미디어를 처리하는 것)은 컴퓨터가 미디어를 데이터로서(픽셀과 같은 분절된 요소 혹은 벡터 그래픽을 정의하는 방정식으로) 재현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에 미디어 소프트웨어가 발전하고 데이터를 주요 미디어 기술로 수용한 것은 미디어와 데이터가 점진적으로 결합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소프트웨어에는 다른 많은 종류와 기술이 포함되고 컴퓨터와 컴퓨터 기기는 미디어를 제작하고 재생하는 것 이외에도 다른 많은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물론 소프트웨어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가 필요하며 네트워크 역시 디지털 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은 내가 미디어를 제작, 편집, 재생하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것을 마뜩잖게 여길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미디어를 제작하기 위해서 포토샵, 플래쉬, 마야 등의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꽤 많은 사람은 스스로 컴퓨터 프로그램과 스크립트를 쓰거나 다른 사람이 작성한 프로그램을 수정해서 미디어를 다룬다. 웹사이트, 웹 어플리케이션이나 다른 인터렉티브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데 종사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소프트웨어 아티스트, 새로운 알고리듬을 개발하는 컴퓨터 과학자, 프로세싱이나 다른 높은 수준의 미디어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는 학생들 등이 그렇다. 이 사람들 모두가 왜 내가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제품 형태의 소프트웨어만을 다루는지 묻는다. 소프트웨어 개발이 점진적으로 민주화되고 있고, 프로그래밍을 하고 스크립트를 쓸 줄 아는 문화 전문가와 학생들의 수가 점점 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는 어플리케이션에 대해 설명하는 대신 프로그래밍을 촉진시키는 데 내 에너지를 써야하는 것일까?

    내가 어플리케이션을 선택한 이유는 문화 비평가들처럼 예외적인 현상(그것이 얼마나 진보적인가에 상관없이)을 강조하기보다는 주류 문화활동을 이해하고자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미디어 관련업계에 일하면서 동시에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어플리케이션 사용자의 숫자에 비해서 훨씬 적을 것이다. 오늘날 일반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영화 편집자, 제품 디자이너, 건축가, 음악가들은 (그리고 유투브에 비디오를 올리고 블로그에 사진이나 비디오를 올리는 일반 사람들도) 소프트웨어 코드를 쓰거나 읽지 못한다. (HTML 마크업을 읽거나 수정하는 것, 혹은 기존의 자바스크립트의 일부를 복사하는 것은 프로그래밍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따라서 소프트웨어가 개념적, 실용적인 측면에서 미디어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일반인과 전문가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들(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웹기반 소프트웨어, 모바일 앱 등)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첫번째 카테고리를 강조한다. 두번째, 세번째 카테고리를 희생하면서 말이다. 왜냐하면 현시점에서 전문적인 미디어를 제작하는 데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은 여전히 대용량 램 메모리와 하드드라이브가 장착된 노트북이나 데스크탑에서 구동되기 때문이다. 또한 포토샵이나 파이널 컷처럼 버전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데스크탑 어플리케이션과 반대로 웹기반 소프트웨어와 모바일 소프트웨어는 현재 급속하게 진화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내가 “문화 소프트웨어”를 정의하는 방식에 대해 제기될 법한 반대 의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문화”라는 용어는 컴퓨터 속의 파일 형태 혹은 실행가능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나 스크립트 형태로 존재하는 분리된 미디어나 디자인 “오브제”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상징, 의미, 가치, 언어, 습관, 믿음, 이데올로기, 의식, 종교, 의복과 행동 양식, 그리고 다른 많은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차원과 요소를 포함한다. 따라서 이 모든 차원을 미디어 파일을 제작 재생하는 도구들로 환원시킨다는 것에 문화 인류학자, 언어학자, 사회학자, 인문학자들은 언짢아 할지도 모른다.

    내가 현재의 “문화”를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와 미디어 오브제, 그리고 이를 통해 일어나는 경험의 특정 부분 집합과 동일시하고 있는가? 물론 아니다. 내말은(그리고 이 책이 보다 상세히 설명하길 바라는 것은) 20세기 말에 인류는 “문화”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차원을 추가했다는 점이다. 이 새로운 차원은 소프트웨어이고, 그 중에 컨텐츠를 제작하고 접근하기 위한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새로운 차원이라는 은유를 사용한다. 다시 말해서, “문화 소프트웨어”는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공간에 툭하고 떨어진 단순한 새로운 오브제(그것이 얼마나 크고 중요하던지 간에)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소프트웨어를 음악, 시각 디자인, 건설된 공간, 의복 양식, 언어, 음식, 클럽 문화, 기업 규범, 말하거나 몸을 사용하는 방식 등과 같은 것에 추가할 수 있는 용어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소프트웨어의 문화”(프로그래밍 활동, 프로그래머와 소프트웨어 기업의 가치와 이데올로기, 실리콘 밸리와 방갈로르의 문화 등)를 연구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소프트웨어의 진정한 중요성을 놓치게 될 것이다. 알파벳, 수학, 인쇄기, 연소 엔진, 전기, 집적회로가 그랬던 것처럼 소프트웨어는 이것이 적용되는 모든 것을 조정하고 개조한다(혹은 최소한 그렇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새로운 차원을 추가하는 것이 공간에 있는 모든 점에 새로운 좌표를 더하는 것처럼, 문화에 소프트웨어를 “추가”하는 것은 문화를 만들어내는 모든 것의 성질을 바꾼다. (이 점에 있어서, 소프트웨어는 “미디어나 기술의 메시지는 이것이 인간의 삶에 일으키는 변화의 규모나 속도 혹은 패턴이다.”라는 맥루언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완벽히 예시한다.)

    요약하자면, 현대 사회는 소프트웨어 사회라고 특징지을 수 있고 현대 문화를 소프트웨어 문화라고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소프트웨어는 “문화”를 구성하는 물질적인 요소와 비물질적인 구조를 형성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도큐먼트에서 퍼포먼스로

    소프트웨어의 사용은 대부분의 기본적인 사회 문화적 활동을 재설정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발전시켜온 개념과 이론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에 대한 예로서 문화적 창조, 전송 그리고 기억을 위한 근대적 “원자” 중 하나로 “도큐먼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컨텐츠는 물리적인 형태로 저장되어 물리적 복사본(책, 필름, 오디오 레코드)이나 전자적 전송 (텔레비전)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소프트웨어 문화에 있어서 “도큐먼트,” “작업,” “메시지,” “녹음”과 같은 용어는 20세기에 쓰이던 것과 다른 의미를 지닌다. 구조와 내용물을 살펴보는 것(러시아 형식주의에서 문학 다윈주의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문화 분석과 이론에 있어서 전형적인 접근 방식)으로 분석할 수 있었던 고정된 도큐먼트 대신에 우리는 이제 변화하는 상태에 있는 “소프트웨어 퍼포먼스”와 인터렉션하게 되었다.내가 “퍼포먼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소프트웨어에 의해 실시간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웹사이트를 탐색할 때,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혹은 휴대 전화의 앱을 사용해서 특정 장소를 검색하거나 근처의 친구를 찾을 때 우리는 미리 정해진 고정적인 도큐먼트가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기기나 서버가 실시간으로 연산해서 생성하는 변화 상태의 결과와 관여하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이러한 퍼포먼스를 생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요소를 사용한다. 디자인 템플릿, 사용중인 기기에 저장되어 있는 파일, 네트워크 서버 상 데이터베이스의 미디어, 실시간 입력(마우스, 조이스틱, 제스쳐 등에 의한) 그리고 기타 다른 인터페이스 등이 그러한 요소에 속한다. 그러므로 일부의 고정적인 도큐먼트가 사용될 수는 있지만, 소프트웨어에 의해 구성되는 최종의 미디어 경험은 일부 미디어에 저장되어 있는 어떠한 단일 고정 도큐먼트에도 상응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회화, 문학 작품, 악보, 영화, 산업 디자인, 건물 등과는 반대로 비평가는 작업의 모든 컨텐츠를 담고 있는 단일 “파일”만 참고할 수가 없다.

    사진을 열거나 PDF 문서를 보는 것 같은 단순해 보이는 일에도 우리는 이미 “소프트웨어 퍼포먼스”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탐색, 편집, 공유 등을 위한 옵션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0세기 비평가가 소설, 영화, TV 프로그램을 평가했던 방식으로 JPEG 파일이나 PDF 파일을 다룬다면 우리가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이것과 인터렉션함으로써 얻는 경험에 대해 부분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이 경험은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인터페이스와 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이것이 우리가 현대 미디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문화 소프트웨어의 도구, 인터페이스, 가정, 개념, 역사에 대해서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여기에는 1960, 70년대 이러한 개념을 정의했던 사람들이 주장한 이론도 포함되어야 한다.

    미디어 “도큐먼트”가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으로 구성되므로 전통적인 도큐먼트 개념을 기반으로하는 기존의 문화 이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50년대 이후 미디어 연구를 주도했던 학문적 패러다임, 즉 문화를 “전송”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보던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기반한 시각을 생각해보자.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의 글 “A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1948)”과 잇달아 워렌 위버Warren Waver와 함께 출간한 책에서 제시한 정보 전송 모델에서 가져온 커뮤니케이션 기본 모델을 매스 미디어에 적용시켰다. 이 패러다임에서는 매스 커뮤니케이션(때로는 일반적인 문화를)을 메시지를 만들어서 보내는 사람과 그것을 수신하는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으로 설명했다. 여기에 따르면 메시지는 기술적인 이유(전송 시의 노이즈)나 의미적 이유(의도된 의미를 수신자가 잘 못 이해함) 때문에 항상 완벽히 해석되지는 않는다.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이론과 미디어 산업계에서는 그러한 부분적인 수신을 문제로 인식했다. 그러나 반대로 영국 문화 연구British Cultural Studies의 창립자인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은 1980년 그러한 현상을 긍정적인 것이라는 견해를 담은 글을 썼다. 홀은 수신자는 받은 정보로부터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그 새로운 의미는 커뮤니케이션 실패가 아니라, 수신한 메시지에 대한 의도적인 재해석 활동이다. 그러나 전통적 커뮤니케이션 연구와 문화 연구는 모두 암묵적으로 메시지는 분명하고 완결된 무엇으로 보았다. 그것이 물리적 미디어(마그네틱 테잎 등)에 저장되어 있거나 송신자가 실시간으로 만들어내거나(생방송 등)에 관계없이 말이다. 그러므로 커뮤니케이션의 수신자는 모든 광고 문구를 읽거나, 전체 영화를 보거나 혹은 전체 노래를 다 듣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런 후에야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거나, 잘못 해석하거나, 의미를 부여하거나, 차용하거나, 리믹스하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각은 1999년 디지털 비디오 레코더(DVR)가 등장하면서 도전받았었는데, 이 사실을 차치하고라고 이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인터렉티브 미디어에 적용되지 않는다. 미디어 접근을 위한 어플리케이션의 인터페이스는 사람들로 하여금 “탐색” 하도록한다. 이러한 어플리케이션에는 웹 브라우저와 검색 엔진, 웹의 하이퍼 링크 구조, 그리고 다시보기, 미리보기, 구매하기 등을 위한 엄청나게 많은 미디어 산물을 제공하는 특정 온라인 미디어 서비스(아마존, 구글 플레이, 아이튠즈, 랩소디, 넷플릭스 등) 등이 포함된다. 사용자는 미디어(이번 검색 결과와 다음 검색결과 혹은 이 노래에서 다른 노래로) 사이를 횡으로, 그리고 미디어 산물(음악 앨범의 노래 리스트에서 특정 노래로) 사이를 종으로 신속히 움직인다. 사용자는 쉽게 임의의 부분에서 미디어를 재생하고 멈출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용자가 “수신”하는 “메시지”는 인지적인 해석을 통해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것일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리(이것이 어떤 정보를 어떻게 받을 것인지 결정한다)하는 것이다.

    이것은 최소한 사용자가 미디어 컨텐츠를 보여주는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과 인터렉션할 때 그 컨텐츠는 고정된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예를 들어, 사용자는 구글 어스를 이용할 때마다 다른 “지구”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구글이 위성사진이나 스트릿뷰를 업데이트했을 수도 있고 3D 빌딩, 새로운 형식의 정보, 기존 형식에 추가한 정보 등을 더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용자나 서비스 제공업자가 추가 메뉴(구글 어스 6.2.1 인터페이스) 중 일부를 선택하거나 KML 파일을 직접 열어서 추가한 정보가 업데이트 됐을 수도 있다. 구글 어스는 웹이 가능케한 새로운 미디어의 전형적인 예이다. 구글 어스는 인터렉티브 도큐먼트로서 모든 컨텐츠가 미리정의된 것은 아니다. 이것의 컨텐츠는 시간에따라 변하고 성장한다.

    일부 경우에 사용자의 행위는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 웹 서비스, 게임 등의 인터렉티브 미디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 “메시지”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구글 어스가 사용하는 지구 재현 방식은 사용자가 새로운 컨텐츠를 추가하거나 맵의 추가 기능을 켜고 끄는 것에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다. 이 재현법의 “메시지”는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구글 어스 사용자는 어플리케이션이 제공하는 기초적인 지도 위에 자신의 미디어나 정보를 추가해서 복잡하고 풍부한 미디어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다. 구글 어스는 단순히 “메시지”가 아니라 사용자가 정보를 계속 쌓아나갈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이것을 상업 미디어를 차용한 20세기의 창조적 활동인 팝아트, 차용 예술, 음악 리믹스, 슬래쉬 소설과 비디오 등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도 있겠지만 이들 사이에는 유사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크다.

    메시지에서 플랫폼으로의 전환은 2004~6년경 웹 변혁의 중심에 있었다. 그 결과는 웹 2.0이라고 불린다. 타인이 만든 특정 컨텐츠를 제공하던 1990년대의 웹사이트에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컨텐츠를 공유하고, 코맨트를 남기고, 태그를 붙일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와 소셜 미디어 사이트가 추가되었다. 위키피디아의 웹 2.0에 대한 글은 그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웹 2.0 사이트는 소셜 미디어를 통한 대화에 있어서 사용자들로 하여금 가상 커뮤니티의 컨텐츠 창작자로서 서로 인터렉션하고 협력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사용자가 소비자로서 컨텐츠를 수동적으로 보기만 할 수 있는 웹사이트와는 다르다. 웹 2.0의 예로는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 블로그, 위키, 비디오 공유 사이트, 호스팅 서비스, 웹 어플리케이션, 매시업, 폭소노미 등이 있다.” 구글 어스를 계속 예로 들자면, 사용자들은 공정 무역 인증, 그린피스 데이터, UN의 새천년 개발 목표 등 다양한 종류의 글로벌한 정보를 추가 했다. 또 다른 예로, 사용자들은 구글 맵이나 위키피디아 혹은 대부분의 다른 대형 웹 2.0 사이트가 제공하는 컨텐츠를 자신의 매시업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것은 웹 서비스업체가 제공하는 컨텐츠를 활용해서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플랫폼을 가꾸는 데 활용하는 것이다.

    웹 기반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유명 소프트웨어에 관한 온라인 토론 포럼, 위키피디아의 집단 협력 편집, 트위터 등)과 함께 웹 2.0 서비스가 광범위하게 활용되면서 정보 누락, 선택, 검열 등 다양한 종류의 “나쁜 행동”들을 빠르게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웹 기반 회사가 제공하는 컨텐츠와 20세기 매스미디어의 컨텐츠를 사이의 또다른 차이점이다. 예를 들어 웹 2.0 서비스에 관한 위키피디아의 모든 글에는 논란, 비평 혹은 오류에 관한 특별 섹션이 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유료 어플리케이션 대신 비슷한 오픈 소스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있다. 오픈 소스 혹은 무료 소프트웨어(모든 무료 소프트웨어가 오픈 소스는 아니다)를 통해 사용자는 추가적인 방식으로 컨텐츠와 소프트웨어 기능을 제작, 리믹스, 공유 할 수 있다. (이것은 오픈 소스가 항상 상업 소프트웨와는 다른 가정과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사용자는 구글 맵과 구글 어스 대신 오픈 소스 혹은 무료 소프트웨어인 오픈 스트리트 맵OpenStreetMap, 지오커먼스GeoCommons, 월드맵WorldMap 등을 사용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기업들 역시 협력적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의 데이터를 쓰기도 하는데, 이 시스템이 기업 자신들의 시스템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플리커와 포스퀘어는 오픈 스트리트 맵을 사용한다. 오픈 스트리트 맵의 컨텐츠 제공자는 2011년 초 34만 명이었다.) 사용자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의 코드를 직접 살펴보면서 이것이 가정하는 것이나 주요 기술을 완벽히 이해할 수도 있다.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웹 서비스와 웹 사이트의 컨텐츠, 탐색과 인터렉션을 위한 다양한 메커니즘, 사용자 자신의 컨텐츠를 추가할 수 있는 능력과 다양한 소스의 매시업, 공동 저작 및 편집을 위한 설계, 컨텐츠 제공자를 모니터하는 메커니즘 등 이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인터렉티브 주도의 미디어를 20세기 미디어 도큐먼트로부터 뚜렷하게 구별해준다. 사용자가 하나의 컴퓨터 파일에 저장된 단일의 로컬 미디어 컨텐츠를 사용하고 있을 때라하더라도(요즘에는 다소 드문 상황),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를 통해 매개된 그 도큐먼트는 20세기 미디어 도큐먼트와는 구분된다. 파일의 컨텐츠와 구성은 사용자의 경험을 부분적으로만 정의할 뿐이다. 사용자는 무슨 정보를 어떤 순서로 볼 것인지 결정하면서 도큐먼트를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다. “올드 미디어old media”(20세기 TV 방송을 제외하고)도 이런 임의 접근random access을 제공하긴했지만 소프트웨어 주도 미디어 플레이어/뷰어의 인터페이스는 미디어를 탐색하고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추가적 옵션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어도비 아크로벳은 PDF 파일의 모든 페이지를 섬네일로 보여 줄 수 있다, 구글 어스에서는 시점을 빠르게 줌인/줌아웃 할 수 있다, 과학 논문및 초록 데이터를 제공하는 ACM Digital Library, IEEE Xplore, PubMed, Science Direct, SciVerse Scopus, Web of Science 등의 온라인 디지털 도서관 및 데이터베이스는 사용자가 선택한 논문에 참고가 되는 다른 논문들도 함께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새로운 도구와 인터페이스는 미디어 도큐먼트 그 자체(출판된 책의 임의 접근 가능성 처럼)나 미디어 접근 기계(라디오 같이)에 고정적으로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그것은 개별적인 소프트웨어 층이다. 이러한 미디어 구조 덕에 도큐먼트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은 채로 새로운 탐색, 관리 도구를 쉽게 추가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클릭 한 번으로 나는 내 블로그에 공유 버튼을 추가할 수 있는데 이것은 컨텐츠가 새로운 방식으로 순환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맥 OS X 프리뷰에서 텍스트 파일을 열어서 형광표시를 하거나, 코멘트를 달고, 링크를 추가하고, 그림을 그리고, 말풍선을 추가 할 수 있다. 그리고 포토샵에서는 “조정 레이어”를 사용해서 원본 이미지는 그대로 두면서 편집을 할 수 있다.



    왜 문화 소프트웨어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가?



    “Всякое описание мира сильно отстает от его развития.” 
    (“세계에 대한 설명은 대게 이것의 실제 발전에 비해서 뒤쳐진다.”) 

    러시아 MTV의 VJ Тая Катюша, 2008.


    우리는 대부분의 컨텐츠의 생산, 분배, 수용이 소프트웨어에 의해서 매개되는 소프트웨어 문화 속에서 산다. 그럼에도, 창조산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은 그들이 날마다 사용하는 소프트웨어(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김프, 파이널 컷, 애프터 이펙트, 블렌더, 플레임, 마야, 맥스, 드림위버 등)의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현대의 문화 소프트웨어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어떻게 이것의 은유와 기법이 생겨났는가? 그리고 애초에 이것이 왜 개발되었는가? 유명한 컴퓨터, 웹 회사들은 매체에 빈번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그들(예를 들어 페이스북, 구글, 애플 등)의 역사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미디어 저작 및 편집 소프트웨어의 역사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디지털 혁명은 활판 인쇄의 발명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일반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이 혁명의 주요 부분인 미디어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발명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문화 업계 종사자들은 쿠텐베르그(활판 인쇄), 브루넬리스키(원근법), 뤼미에르 형제, 그리피스, 아이젠슈타인(영화), 르 코르뷔지에(건축), 이사도라 던컨(현대 무용), 솔 바스(모션 그래픽스)와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만약 당신이 이들을 모른다할지라도, 알고 있는 문화 종사자 친구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략 1960에서 1978년 사이 컴퓨터를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오늘날의 문화적 기계로 이르게한 J.C.R. 리클라이더, 이반 서덜랜드, 테드 넬슨, 더글러스 엥겔바트, 앨런 케이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에 대해서 들어 본 사람들은 지금도 많지가 않다.

    놀랍게도 문화 소프트웨어의 역사라는 카테고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요 인물들과 제록스 파크나 MIT 미디어랩 같은 연구소에 관한 전기 위주의 책들만 있을 뿐 미디어 도구의 계보를 추적하는 종합적인 서적은 없다. 또한 문화 소프트웨어의 역사를 미디어, 미디어 이론, 시각 문화의 역사와 연관지을 수 있을만한 어떠한 연구도 없다.

    현대 예술 기관들(뉴욕현대미술관과 테이트 같은 미술관, 파이돈과 리졸리 같은 출판사 등)은 현대 예술의 역사에 대해서 다룬다. 비슷하게 헐리우드는 스타, 감독, 촬영 감독, 고전 영화 등의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화 기관과 컴퓨터 산업계가 문화 컴퓨팅의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예를 들어 왜 실리콘 밸리는 문화 소프트웨어를 위한 박물관을 갖고 있지 않은가? (캘리포니아 마운틴 뷰의 컴퓨터 역사 박물관에는 하드웨어, 운영 체제, 프로그래밍 언어를 중심으로한 상당한 상설 전시물이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역사에 관한 것은 없다.)

    나는 경제적인 것이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조롱당하고 받아들여지지 않던 현대 예술은 결국 투자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에는 20세기 예술가들의 그림이 가장 유명한 고전 예술가의 작품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렸다. 비슷하게 헐리우드는 옛날 영화를 DVD나 블루레이 등의 새로운 포맷으로 재발매하여 계속해서 수익을 얻고 있다. IT 산업은 어떤가? 그들은 옛날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어떠한 이윤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소프트웨어의 역사를 연구해서 홍보하지를 않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어도비 포토샵, 오토데스크 오토캐드 그리고 다른 많은 문화적 어플리케이션이 그것들의 최초 버전(보통 1980년대에 나온)에 기반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기업들은 그러한 최초 버전에 사용된 새로운 기술에 관한 특허를 통해 이윤을 얻고 있다. 그렇지만 1980년대의 비디오 게임들과 달리 이러한 초기 소프트웨어 버전은 현재 다시 발매할 수 있는 독립적인 제품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나는 한 때 매우 중요했지만 현재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옛날 소프트웨어 버전이나 어플리케이션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알더스의 페이지 메이커 같은 것들 말이다. 소비 문화가 시스템적으로 어른들의 어린시절 문화적 경험에 대한 향수를 이용한다는 점을 놓고 보면 초기 소프트웨어 버전을 시장에 내놓을 거리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하다. 만약에 내가 1980년 대에 맥라이트MacWrite와 맥페인트MacPaint를 혹은 1990-1993년에 포토샵 1.0과 2.0을 날마다 사용했었다면, 이러한 경험은 그 시절에 영화나 예술을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마도 내 “문화적 계보”의 큰 부분을 차지 할 것이다. 내가 상업 제품을 위한 새로운 분야를 만드는 것을 변호하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만약 지금 초기 소프트웨어가 사용가능하게 널리 퍼져있다면 이는 소프트웨어에대한 문화적 관심을 촉진시킬 것이다. 현대 모바일 플랫폼에서 재창조된 고전 컴퓨터 게임의 인기가 비디오 게임 연구 분야를 촉진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이론가들이 문화 소프트웨어를 “소셜 미디어,” “소셜 네트워크,” “뉴미디어,” “미디어 아트,” “인터넷,” “인터렉티비티,” “사이버문화”와 구분된 독자적인 주제로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디어 편집 소프트웨어에 대한 개념적 역사뿐만 아니라 미디어 생산에 있어서 소프트웨어의 역할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 또한 부족하다. 예를 들어, 1900년대에 널리 쓰인 애니메이션과 합성 어플리케이션인 애프터 이펙트는 동영상의 언어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같은 시기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젊은 건축가가 사용했던 알리아스, 마야 그리고 다른 3D 패키지는 건축의 언어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 1994년 HTML의 기본 뼈대에서 시작해서 5년 후 시각적으로 화려한 플래쉬를 사용한 사이트들 그리고 2010년대 초기의 반응형 웹디자인에 이르는, 웹 디자인 도구와 웹사이트 미학의 공진화는 어떤가? 기사나 컨퍼런스 강연에서 이와 비슷한 질문에 대한 언급이나 짧은 토론은 빈번하게 보인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이러한 주제에 관한 연구 서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종 건축, 모션 그래픽스, 그래픽 디자인 등의 분야에 관한 책에서는 소프트웨어 도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추구하는 것의 중요성이 간단하게 논의되긴 하지만 대게 그 이상 진전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현대 미디어 소프트웨어의 작동방식과 디자인과 미디어 (그래픽 디자인, 웹 디자인, 제품 디자인, 모션 그래픽스, 애니메이션, 영화를 포함한)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언어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체계적인 고찰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록 이 책 한권이 이 모든 것을 다 아우를 수는 없지만 나는 이 책이 그러한 관련성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일반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재정의된 특정 문화 영역(모션 그래픽스와 시각 디자인 등)을 소프트웨어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미디어 디자인을 위한 소프트웨어의 이론에 집중함으로써 이 책은 게임 플랫폼과 디자인(이안 보고스트, 닉 몬트포트)과 전자 문학(노아 워드립-프루인, 매튜 커센바움)에 관련된 소프트웨어를 다루었던 이론가들의 작업을 보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관련 분야인 마크 마이노, 믹 몬트포트, 이안 보고스트 등이 발전시키고 있는 코드 연구와 플랫폼 연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리노의 다음 이야기에 따르면(나역시 전적으로 동감한다) 소프트웨어 연구, 코드 연구 그리고 게임 연구, 이 세 가지 분야는 상호보완 관계에 있다. “비평적인 코드 연구는 소프트웨어 연구와 플랫폼 연구에 비교하면 신생 분야이다. 하지만 이것은 프로그램의 인터페이스나 사용성(소프트웨어 연구처럼)이나 이것의 근간이 되는 하드웨어(플랫폼 연구처럼)보다는 프로그램의 코드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책의 흐름에 관하여

    1990년대와 2000년대 중반 사이에 미디어 소프트웨어는 19, 20세기의 미디어 기술을 대체시켰다. 현대의 미디어는 문화 소프트웨어를 통해 만들어지고 접근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직까지 그것의 역사에 대해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1960년과 1970년대 후반 사이, 현대의 문화 소프트웨의 근간이 되는 개념과 실질적 기술을 발명한 사람들의 동기는 무엇이었나. 1990년대의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하는 생산 방식은 “미디어”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컨텐츠 개발 소프트웨어의 인터페이스와 도구는 현대 디자인과 미디어의 미학과 시각적 언어를 어떻게 변형시키고 형성시켜왔는가.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다루는 핵심적인 질문들이다.

    나는 문화 소프트웨어나 특정 미디어 저작 소프트웨어의 종합적인 역사를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혹은 미디어 소프트웨어로 인해 가능해진 문화 분야의 모든 새로운 창조적 기술에 관해 논의하려는 것도 아니다. 대신 나는 그 역사의 특정 경로를 추적할 것인데, 이것은 1960년에서 출발해서 현대까지 이르며 핵심적인 지점들을 통과할 것이다. 지금부터 그 흐름을 요약하고 책의 각 부분에서 다룬 주요 개념을 소개하겠다.

    Part 1은 1960, 70년대를 다룬다. 뉴미디어 이론가들이 디지털 미디어와 이전의 물리적, 전자적인 미디어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중요한 자료인 이반 서덜랜드, 더글러스 앵겔바트, 테드 넬슨, 앨런 케이 등 그 시기에 활약한 문화 소프트웨어 개척자들의 글과 활동에 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이들이 오늘날 컴퓨터가 다른 미디어를 재현 혹은 “재매개”할 수 있도록 개념과 기술을 발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컴퓨터를 미디어 창작과 변형을 위한 기계로 바꾸기 위한 체계를 만들려고 했는가? Part 1에서는 “문화 소프트웨어 운동”의 주인공인 앨런 케이의 아이디어와 작업을 중심으로 이러한 질문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물론 현대 미디어 소프트웨어의 DNA를 구성하는 세부 요소들을 발명한 그밖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른식의 역사를 구성해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1970년대에 제록스 파크의 밥 테일러, 찰스 태커, 존 워녹이나 최초의 매킨토시 디자인에 참여했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1960년대 가장 잘 알려진 인물들이 어떻게 미디어를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이론적 분석조차 없는 상황이므로 이 책은 이 인물들과 그들의 이론적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

    앨런 케이를 비롯한 개척자들은 단지 예전 미디어의 외형을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디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새로운 미디어는 기존의 재현적인 포맷을 사용하면서도 많은 새로운 요소를 더했다. 이는 동시에 확장 가능해서 사용자들이 쉽게 새로운 요소를 더하고 새로운 미디어를 만들 수 있어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케이는 컴퓨터를 최초의 메타미디어metamedium라고 부른다. 메타미디어의 컨텐츠는 “광범위한 영역의 기존 미디어와 아직 발명되지 않은 미디어를 포함한다.”

    메타미디어 등장을 위한 기초은 1960년대와 197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물리적, 전자적 미디어는 체계적으로 소프트웨어에서 재현되었고 새로운 미디어도 다수 발명되었다. 이 발전은 이반 서덜랜드의 인터렉티브 디자인 프로그램인 스케치패드Sketchpad(1962)에서 시작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미디어 소비자까지도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한 미디어 저작과 디자인을 할 수 있게 해준 오토캐드AutoCAD(1982), 워드Word(1984), 페이지 메이커PageMaker (1985), 알리아스Alias (1985),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1987), 디렉터Director (1987), 포토샵Photoshop(1989), 애프터 이펙트After Effects(1993) 등 상업적인 데스크탑 어플리케이션에 이른다. (이러한 개인용 컴퓨터 어플리케이션과 나란히 페인트박스Paintbox (1981), 헤리Harry (1983), 애비드Avid (1989), 플레임Flame(1992) 등 TV 및 비디오 산업 분야의 전문가를 위한 훨씬 고가의 시스템도 등장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앨런 케이의 1977년의 이론이 이후 30년의 발전을 정확하게 예견했는가? 아니면 “메타미디어”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발전들이 있었나?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미디어에는 기존의 것들을 소프트웨어로 시뮬레이션 한 것도 있고, 새로운 것들도 있다. 두 가지 모두 지속적으로 새로운 요소를 추가시키며 확장해왔다. 이러한 발명의 과정은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가 아니면 특정한 경로를 따르는가? 다시 말해서 컴퓨터 메타미디어의 확장의 메카니즘은 무엇인가?

    Part 2와 Part 3는 이러한 질문에 관한 것이다. 나는 전문적인 미디어 생산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미디어 소프트웨어가 사용되던 1990년대에 집중하여, 컴퓨터 메타미디어의 확장과 발전의 몇 가지 메카니즘을 논의한다. 이러한 발전과 시각적 미디어(메타미디어 수용 과정이 충분한 속도에 이른 이후인 1990년대 후반에 개발된)의 새로운 미학을 세 가지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할 것이다. 그 세 가지 개념은 미디어 하이브리드media hybridization, 진화evolution, 딥 리믹스deep remix이다. Part 2에서는 메타미디어 발전의 두번째 단계를 몇 가지 디지털 미디어 장르를 예로들어 이론적으로 분석한다. Part 3에서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시각 디자인 (모션 그래픽스, 그래픽 디자인)을 세밀하게 다룬다. 이미지와 동영상, 합성 이미지의 새로운 미학과 이를 제작하는 데 사용한 애프터 이펙트와 같은 소프트웨어의 작동 방식과 인터페이스 사이의 관계를 분석할 것이다.

    나는 기존의 물리, 전자적 미디어 기술이 소프트웨어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기존에 독자적으로 존재했던 이질적인 기술과 도구들이 모두 동일한 소프트웨어 환경에서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만남이 인간의 문화적 발전과 미디어 진화에 근본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이것은 미디어 기술과 그것을 사용하는 전문가들 그리고 미디어의 개념 자체의 전체적 양상를 와해, 변형시켰다.

    이 기술들이 컴퓨터에서 시뮬레이션되면, 호환되지 않던 미디어 기술이 끝없는 방식으로 조합되기 시작하고 새로운 미디어 혼합물, 혹은 생물학적 은유를 사용해서 새로운 “미디어 종media species”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널리 사용되고 있는 구글 어스 어플리케이션을 예로 들면, 전통적인 맵핑기술과 3D 그래픽, 소셜 소프트웨어, 검색 등의 다양한 요소와 기능이 합쳐진 것이다. 나는 개별적이던 소프트웨어를 결합할 수 있는 이러한 능력이 인류의 미디어, 기호,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단계를 나타낸다고 본다. 이것은 “소프트웨어화softwarization”에 의해서 가능해진 것이다.

    나는 미디어 진화의 이 새로운 단계를 하이브리드성hybrid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대부분의 기존 미디어가 컴퓨터에서 시뮬레이션 되고 컴퓨터에서만 실현가능한 새로운 타입의 미디어가 일부 발명되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러한 미디어가 상호간의 요소와 기술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친숙한 용어인 리믹스와 구분하기 위해 나는 새로운 용어인 딥 리믹스를 제시한다. 리믹스는 일반적으로 한 가지(음악 리믹스처럼) 혹은 소수의(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처럼) 미디어로부터 생산된 컨텐츠를 조합한다. 반면 소프트웨어를 통한 생산 환경에서는 여러가지 미디어의 컨텐츠를 조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의 근본적인 기술, 작업 방식, 재현과 표현 방식도 리믹스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딥 리믹스이다.

    오늘날 하이브리드와 딥 리믹스는 소프트웨어가 사용되는 모든 문화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나는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이것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그 분야는 그래픽 디자인, 그 중에서도 모션그래픽스이다. 모션 그래픽스는 활발한 현대 문화 영역 중 하나이지만 내가 아는 한 어디에서도 이론적으로 자세하게 분석된 적이 없다. 현대 모션 그래픽스는 1950, 60년대의 솔 바스, 파블로 페로의 작업 등을 그 전신으로 볼 수 있지만, 1990년대 중반에서 시작된 가파른 성장은 동영상 디자인 소프트웨어, 특히 어도비가 1993년에 출시한 애프터 이펙트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딥 리믹스는 모션 그래픽스 미학의 중심이 된다. 다시 말해서 현재 세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모션 그래픽스 프로젝트들 중 다수는 다양한 기술과 미디어 전통(애니메이션, 그림, 타이포그래피, 사진, 3D 그래픽스, 비디오 등)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는 데서 나오는 미적인 효과를 사용한다. 내 분석의 일부로서 현대 디자인 스튜디오의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기반 작업 흐름이 모션 그래픽스의 미학과 시각 디자인 전반의 형태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살펴 볼 것이다.

    문화의 컴퓨터화와 관련한 다음의 주요 사회적 흐름은 소셜 네트워크, 소셜 미디어 서비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 종류와 관련이 있다. 소셜 네트워크와 소셜 미디어의 유행은 천천히 시작되었다. 2005, 6년(플리커, 유투브)에 급증해서 그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 1990년대의 미디어 혁명은 창작업계 전문가들에 영향을 끼쳤고 2000년대의 미디어 혁명은 우리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다시 말해서 페이스북, 트위터, 파이어폭스, 사파리, 구글 검색, 구글 맵, 플리커, 피카사, 비메오, 블로거 그리고 수많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수억의 사람이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여전히 소셜미디어 확산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새로운 경향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이르다고 판단했다.(이것은 내가 이 책의 초안에서 소셜 미디어에 관한 부분을 편집하면서 명확해졌다. 내가 자세히 분석했던 일부소셜 미디어 서비스가 이미 사라진 것이었다.) 일부 인기 소셜 미디어 서비스는 쇠퇴하고 다른 새로운 서비스가 성장을 하고 있으며 소프트웨어의 “사회적” 기능이 여전히 확장되고 있다. 대신, 나는 소셜 네트워크와 소셜 미디어의 폭발적 확산 이전의 “디지털 미디어”를 가능케하고 형성한 핵심적인 발전을 추적하는데 몰두한다. 1960, 70년대에 미디어 생산 및 편집을 위한 기계로서 컴퓨터에 관한 생각들, 1980, 90년대 그러한 생각을 미디어 어플리케이션에 적용한 것, 이에 뒤따르는 시각 미디어 언어의 변형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더 정확히 하자면 이 역사를 1961년에서 1999년 사이로 한정할 수 있다. 1961년에 MIT의 이반 서덜랜드는 스케치패드를 만들었고, 이것은 대중에게 공개된 최초의 컴퓨터 디자인 시스템이되었다. 1999년 애프터 이펙트 4.0에서는 프리미어 파일 가져오기import 기능이 추가되었고, 포토샵 5.5에서는 벡터기반 이미지를 만들수 있었다. 그리고 애플은 파이널 컷 프로 최초 버전을 소개했는데, 이는 특별한 하드웨어 없이 일반적인 컴퓨터로 전문적인 미디어를 제작할 수 있는 현재의 상호운용가능한 미디어 저작 및 편집 도구 패러다임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기 이후에도 전문적인 미디어 도구는 계속 진화하긴했지만, 그 변화의 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소프트웨어로 만든 전문적 시각 미디어의 언어 역시 1990년대 후반의 급진적인 변화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연결성을 그려보기 위하여 1990년대와 2000년대의 특정 미디어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 분석할 것이다. 그렇지만 미디어 어플리케이션의 인터페이스와 기능에 관해 논의할 때는 가능한 한 현재 소프트웨어 사용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최근 버전을 중심으로 할 것이다. 따라서 2000년대 후반 일반 사용자용으로 등장한 모든 미디어 소프트웨어의 소셜 미디어 기능도 고려할 것이다(예를 들어 아이포토 iPhoto의 “공유” 메뉴). 그리고 하이브리드 메카니즘은 전문 미디어 소프트웨어와 전문적으로 제작된 미디어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소셜 웹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의 진화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구글 어스와 같은 중요한 예시도 포함시킬 것이다.

    내가 예로서 선택한 미디어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야할 것 같다. 나는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미디어 저작을 위한 데스크탑 어플리케이션에 집중하기로 했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 드림위버, 애프터 이펙트, 파이널 컷, 마야, 3D 맥스, 워드, 파워 포인트 등이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이미지 편집, 벡터 그래픽스, 페이지 레이아웃, 웹디자인, 모션 그래픽스, 비디오 편집, 3D 모델링 및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종류의 미디어 저작 소프트웨어 카테고리의 예가 된다. 웹 브라우저(파이어 폭스, 크롬, 인터넷 익스플로러), 블로깅 도구와 퍼블리쉬 서비스(워드프레스, 블로거), 소셜 네트워크(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 미디어 공유 서비스(플리커, 핀터리스트, 유투브, 비메오), 이메일 서비스 및 클라이언트(지메일, 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 웹오피스(구글 독스), 지형 정보 시스템(구글 어스, 빙맵) 등도 참고 할 것이다. 나는 사용자들이 미디어와 어떻게 인터렉션하는지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컴퓨터에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는 미디어 플레이어(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 아이튠즈, 퀵타임)와 도큐먼트 열람 어플리케이션(어도비 리더, 맥 OS 프리뷰) 역시 중요한 소프트웨어 카테고리로 다룰 것이다. 일부 프로그램과 웹 서비스는 인기가 떨어지고, 새로운 것들이 시장을 점유해가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이 책을 읽을 때 쯤이면 앞서 나열한 리스트는 낯설어 보일 수도 있고, 많은 어플리케이션들은 데스크탑에서 웹으로 옮겨갔을지도 모르지만, 카테고리 자체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나는 내 논의가 가능한 한 현재의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에게 의미가 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중요하지만 더 이상 사용되지 않거나 사라진 프로그램은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갈 것이다. 그러한 것들에는 쿼크익스프레스, 워드퍼펙트, 매크로미디어 디렉터가 있다. 다행히도 내가 자세히 분석할 두 가지 프로그램, 챕터 2의 포토샵과 챕터 5의 애프터 이펙트는 199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현재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1980, 90년대 사용된 디지털 미디어 저작 및 편집 시스템 중에서 중요하지 않은 종류에 관해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개인용 컴퓨터의 그래픽 처리 능력 한계 때문에 실리콘 그래픽스사의 그래픽 워크스테이션(특별 제작된 컴퓨터) 등을 통해서만 이러한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연대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페인트박스(1981년 콴텔의 TV 방송을 위한 그래픽스), 미라지Mirage(1982년 콴텔의 실시간 디지털 비디오 효과 프로세서), Personal Visualizer(1988년 웨이브프론트의 3D 모델링 및 애니메이션), 헨리Henry와 할Hal(1992년 콴텔의 효과 편집, 그래픽스 및 합성 시스템), 인페르노Inferno와 플레임Flame (1992년 디스크릿 로직의 영화, 비디오 합성).

    1990년대 중반 플레임과 SGI 워크스테이션의 가격은 45만 달러, 인페르노 시스템은 70만달러였다. 2003년 인페르노 5와 플레임 8이 나왔는데 가격은 각각 571,500달러, 266,500달러였다. 이런 시스템은 가격 때문에 TV나 영화 스튜디오 혹은 대형 비디오 효과 업체에서만 사용되었다.

    현재 가장 수요가 많은 영화, 애니메이션, TV 광고 등 대량의 데이터로 작업하는 미디어 제작 영역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시스템의 고가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2000년대 후반 PC, 맥, 리눅스에서 사용가능한 버전이 나오기는 했지만 최첨단 버전은 여전히 특별한 하드웨어를 필요로 하고 가격도 매우 높다. (비디오 편집, 효과, 색보정에 사용되는 스모크, 플레임, 러스트를 포함하고 있는 오토데스크 플레임 프리미엄의 2010년 에디션 가격은 12만 5천 달러였다.)

    이 책을 읽는 일반 독자가 이런 고가의 시스템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관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1980, 90년대의 동영상 미디어의 역사를 보다 종합적으로 정리(앞으로 누군가 해주기를 희망한다)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스템과 이것의 활용에 관한 고고학과 계보학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또 한가지의 설명이 필요하다. 일부 독자는 내가 오픈 소스 어플리케이션이 아닌 상업 어플리케이션에만 집중하는 것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김프 보다는 포토샵, 잉크스케이프보다는 일러스트레이터에 관해 기술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오픈 소스와 무료 소프트웨어를 좋아하고 지지하며 내가 직접 사용하기도 한다. 나는 1994년에 이래로 내가 쓴 모든 글을 manovich.net에 올려서 누구나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리고 방대한 양의 미디어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각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7년 연구소(www.softwarestudies.com)를 설립했을 때, 무료 소프트웨어 및 오픈 소스를 지향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개발한 도구를 사용하고 변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책이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대신에 상업적 미디어 저작 및 편집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프트웨어 문화 대부분의 영역에 있어 사람들은 무료 어플리케이션과 웹 서비스를 사용한다. 웹 브라우저, 웹 이메일, 소셜 네트워크,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및 스크립트 언어 등이 그러한 예이다. 기업들이 이러한 어플리케이션과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유는 그들이 다른 방식으로 이윤을 얻기 때문이다. (광고, 추가 기능과 서비스에 대한 비용 부과, 멤버쉽 이용료, 기기 판매 등.) 그러나 미디어 저작 및 편집을 위한 전문적인 도구의 경우에는 상업 소프트웨어가 주를 이룬다. 이것이 항상 더 나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다. (예를 들어 구글 트렌드에 “Photoshop(포토샵)”과 “Gimp(김프)”를 입력하면 2004년 이래로 포토샵에 관한 검색이 8배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일반적인 사용자 경험과, 가장 일반적인 저작 도구(모두 상업 제품인)를 사용해서 만든 수많은 작업에 공통적인 미디어 미학의 특징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제품을 분석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 접근과 공동작업을 위한 도구를 분석할 때에도 나는 가장 널리 쓰이는 제품을 예로 들 것인데 여기에는 영리회사가 제공하는 무료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사파리, 구글 어스)와, 무료 오픈 소프 소프트웨어(파이어폭스)가 모두 포함된다.




    원문: Software Takes Command (2013) by Lev Manovich
    번역: 
    김용훈